[한마당-손수호] 언어의 함정

입력 2012-03-20 18:13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맥락짓기(contexting)’로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한다. 맥락도가 높을수록 최소한의 정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낮을수록 부족한 맥락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언어와 맥락이 호응해야 소통이 잘 이뤄진다. 여기서 맥락을 구성하는 요소는 ‘정보’와 ‘의미’다.

인터넷 환경은 인간의 소통력을 확장하는 데 기여했다. 카카오톡과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팟캐스트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미디어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언어능력까지 향상된 것 같지는 않다. 언어는 화자(話者)와 청자(聽者)의 입장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는 데, 이 간격이 점차 벌어지는 느낌이다.

석호익 전 KT부회장이 2007년 발언에 발목 잡혀 새누리당 공천에서 떨어졌다. 당시 한 조찬강연회에서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진화했다”는 근거로 문제의 ‘구멍론’을 폈다. 인터넷에 올라온 강연 전문을 살펴보니 미래는 여성시대임을 강조한 내용이었으나 대중은 문제된 부분만 해독하고 분노를 표시했다. 정당은 이 분노가 무서워 그를 버렸다.

‘고대녀’ 김지윤씨의 ‘해적기지’ 발언도 비슷하다. ‘해적’과 ‘해군’ 사이에 드넓은 바다가 있는 데도 소설 ‘임꺽정’ 등에서 읽은 의적(義賊) 프레임, 즉 기득권층은 나쁘니 타파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엄호했으나 진보당 비례대표에서 낙천했다.

한때 시끄러웠던 이정렬 판사의 ‘가카새끼 짬뽕’과 서기호 전 판사의 ‘가카 빅엿’은 남의 언어를 패러디하다 함정에 빠진 케이스다. 이 판사의 표현이 ‘나가사끼 짬뽕’이라는 상품명에서 따왔고, ‘가카 빅엿’ 역시 ‘쫄면 안돼’라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인용한 것인데, 법관들이 사회적 맥락을 읽지 못해 욕을 먹었다.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후보자의 말을 둘러싼 시비가 속출할 것이다. 본래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어서 잘 다루어야 한다. 인화성이 강한 SNS에서는 짧은 문장 속에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야 하니 위험부담도 그만큼 커진다. 내용을 축약하거나 전달하는 과정에서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

공인의 반열에 들 후보자라면 언어를 다루는 훈련이 필요하다. 홀의 이론에 기대어 정리하자면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SNS를 이용하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 ‘의미’를 추구할 때는 전통 미디어가 낫다. 그게 필화(筆禍)를 예방하는 길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