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그녀가 이 땅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땅에서 하늘처럼’
입력 2012-03-20 21:17
땅에서 하늘처럼/이민아 지음/시냇가에심은나무
세상에 서럽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죽음을 ‘서러운 죽음’이라고 말하기 싫다. 이 죽음의 의미가 반드시 있을 것이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민아 목사의 책을 펴낸 출판사 ‘시냇가에심은나무’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지난 15일 오후 2시30분 경. “소식 들으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직감했다. 바로 되물었다. “아니, 이 목사님에게 무슨 일 있습니까?”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영안실. 영정 사진 속의 그는 우아한 미소로 문상객들을 맞고 있었다. 순간, 그의 첫 책인 ‘땅 끝의 아이들’ 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만났던 길지 않은 날들이 떠올려졌다. 여러모로 그녀는 아버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을 닮았다. 속사포같이 퍼붓는 말의 향연, 온 몸 다해 표현하는 그 열정….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길을 가고 있는 아버지와는 달리 이 목사는 이미 영성의 세계 깊숙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에게는 무언가 외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 육신은 스러져가도 결코 멈출 수 없었던 외침을 외치다가 그는 갔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다.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진정한 신자가 되며 ‘이 땅에서 하늘처럼’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죽는 순간까지 외치고 싶어 했다.
결국 이 목사의 유작이 되어버린 이 책에는 제목 그대로 ‘땅에서 하늘처럼’ 사는 방법은 오직 거듭나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고인의 염원이 담겨 있다. 이 전 장관에 따르면 이 목사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 간 그 순간까지 치유를 확신했다고 한다. 아버지 하나님이 반드시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면 무엇인가? 이 목사의 믿음이 맹목적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저를 사랑하시는 능력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동안 저의 질병을 여러 번 고쳐주셨기 때문에 또 고쳐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그 치유를 온전히 다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내 몸이 죽는다 해도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영정 사진으로 고인을 만난 날, 나는 허전한 마음 가눌 길 없어 ‘땅끝의 아이들’을 펴 보았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아이(이 목사의 큰 아들)를 묻고 ‘내 사랑하는 아들, 유진’이라고 묘비명을 하던 날, 꿈을 꿨습니다. 그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이 아이가 지금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 슬퍼하지 말아라. 지금 기뻐하며 잘 쉬고 있다’라고요.”
마치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에게 하는 말과 같다. “이민아는 지금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다. 슬퍼하지 말아라.” 그 꿈을 꾼 이후에 이 목사는 아들의 묘비명을 바꿨다. ‘유진 김, 아버지 집에서 이제 편히 쉬고 있습니다.’ 아들과 함께 이 목사 역시 지금 아버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으리라.
이 목사가 떠나고 보니 ‘땅에서 하늘처럼’이란 제목이 기막힐 정도로 그녀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CTS기독교방송에서 고인이 열 차례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엮은 것. 치료 받으며 병실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난 그 감격과 기쁨을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모든 이들에게 전했다. ‘거듭나야만 들어가는 아버지의 나라’, 등 소제목 별로 이 목사가 실제 경험하고 깨달은 내용이 책에 기술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남을 통한 아버지 하나님과의 만남이 강조된다.
책에는 이 목사가 이미 사망 권세를 뛰어넘은 승리의 삶을 살고 있었음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암이 당장 낫는 것 보다 더 큰 꿈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누리는 삶을 나누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유일한 이유가 ‘아버지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늘나라가 이 땅에 반드시 임한다’는 기쁜 소식을 땅 끝까지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의 별세를 두고 비극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무엇이 비극인가? 하늘 아버지 뜻도 모르고 이 땅을 살다 수명 다해 가는 것인가, 아니면 53년 짧은 생애를 살더라도 그 하늘 아버지와 동행하다가 영원한 안식처에 거하는 것인가. 정녕 무엇이 비극인가?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