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11) ‘女福 터져 팔자 고친 김정택’에 관한 에피소드

입력 2012-03-20 18:23


나는 아내 덕분에 첫 번째 시험을 잘 통과했다. 내가 또 다시 야간업소에서 일하고자 했을 때 아내가 응해주었다면 나는 또 다시 방탕의 생활로 접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참으로 고맙고 귀한 내 아내다.

내 아내 박해순 권사는 전북 전주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 신자로서 1980년 5월 9일 나와 결혼했다. 결혼 후 한동안 아내는 우리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에 적응치 못해 힘들어했다. 집에서 간혹 구역예배라도 드릴 때면 음식을 차려놓고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가 교인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야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며느리에게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언젠가는 며느리에게도 복음이 들어가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부터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신앙이 급성장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신앙인인 나를 선도하게 됐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모델이 된 것이다. 거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아내가 경기도 고양의 한 기도원에 들렀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아내는 그날 기도원에서 찬양을 하던 중 너무나 좋은 예수님을 알게 됐다. 아내는 목이 터져라 울며불며 찬양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그 찬양을 멈추지 않았다. 거실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찬양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날 아내가 실성한 줄 알았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 않은가. 거기다 아내가 기도원을 가게 된 것도 우연 치고는 희한했다. 그때는 우리 부부가 남매를 낳고서 부모님 댁에서 분가한 직후였다. 새로 이사한 집의 위층 아주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중 어느 날 그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경기도 고양의 한 기도원을 가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내는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틈만 나면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양했다. 내가 모태신앙인이면서도 세상에 두 발을 푹 담그고 날라리 신자로 지내고 있는 중에 아내는 신앙의 바탕을 차곡차곡 다져나갔다.

아내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불교 집안인 처가의 모든 가족을 전도했다. 4남3녀의 막내인 아내는 처가 부모님은 물론이고 오빠와 언니들에게 복음을 전해 교회로 인도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리고 내친 김에 내 인생의 반전극을 연출하게 해주신 전몽월 목사님에 대해서도 잠깐 밝히겠다. 비 오는 날 밤에 심수봉씨와 함께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면서 나를 찾아와선 “죄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고 일침을 가하신 당시의 전도사님 말이다.

전 목사님은 현재 목회 사역과 함께 사단법인 ‘나누리’의 이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활기차게 하고 계신다. 여성이면서도 뛰어난 영적인 파워를 가지신 그분은 상대가 누구든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여지없이 곧은 말을 하신다. 나는 신앙적으로 상담할 거리가 있으면 그분을 찾는다. 그분은 한번도 내 기대를 저버리신 적이 없었다. 나는 그분을 감히 내 신앙의 멘토로 삼고 있다.

전 목사님을 보노라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제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전 목사님의 말씀이라면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눈에는 그분이 바로 예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분으로 인해 나는 지금도 서울 전농동의 지역아동센터를 나름대로 열심히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주도하는 음악회나 각종 행사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두 여성, 그러니까 아내와 전 목사님 덕분에 팔자를 고친 사람이다. 거기다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치면 세 여성이 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었다. 가히 여복(女福)이 터진 사람이라고 해도 실례가 되지 않으려나? 예수님의 고난을 진정으로 슬퍼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증언한 이들도 여성이었다.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