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태정] 韓食 예찬
입력 2012-03-20 18:05
‘집 떠나면 고생이다.’ ‘해외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유독 한식에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음식으로 고생하는 나를 보면 타문화 알레르기라도 있는 듯 촌스런 자신을 발견한다. 문화체험이라는 명목 아래 슬쩍슬쩍 도전해보지만 매번 실패다. 해외에서 수소문해 한국음식점을 발견하면 반가움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위장이 춤추는 육체의 향연을 느끼며 파블로프의 개가 된 기분이다.
해외 주재원으로 계신 분이 업무차 잠시 한국에 들어오셨기에 만남을 가졌다. 그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늘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먹고 싶은 한국 음식 리스트 작성! 한국을 떠나서 생활하는 그에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처럼 먹지 않고 임지로 돌아가면 후회할 소중한 음식 리스트라고 한다.
그 목록을 가지고 한국에 있는 동안 지인을 만나면서 메뉴를 하나하나 섭렵해나간다고 한다. 이날 나와의 만남에서 그가 선택한 음식은 순대국이었다. 그의 리스트를 슬쩍 보니 아귀찜, 조개구이, 보쌈 등 토속음식 일색이었다. 타지에서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충족감이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라마다 토양과 기후 등 환경이 달라 같은 씨앗을 품어도 맛에는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여기에다 한식은 이제 웰빙 음식의 선두주자로 대접받는다. 현미와 채소·과일을 중점적으로 섭취하면서 약으로 못 고치던 고혈압과 신장병을 고친 목사님, 20년을 괴롭히던 당뇨병이 80세에 나아 더 이상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되었다는 부산의 할머니. 최근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방영한 ‘글로벌 결혼스타 특집’에서는 외국 신랑이나 시어머니가 한식을 통해 이룬 다이어트 성공담과 건강해진 경험을 전해 한식의 놀라운 효능을 입증했다.
한식의 디스플레이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서양식이나 중국식은 ‘시간전개형’인 데 반해 한식의 상차림은 한 상에 다 차려놓는 ‘공간전개형’이다. 따라서 그때그때 기호에 맞게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기에 자유를 속박하는 느낌이 없다. 또한 한국은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지만 음식만큼은 한식이라는 커다란 테두리를 유지하며 고유한 맛의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한식을 예찬해도 세계의 고유음식을 문화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 따른 허전함은 남는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면 김치가 생각나고, 스테이크를 먹고 나면 매콤하고 칼칼한 무침이 떠오르니 대략 난감이다. 올해만큼은 그 나라의 특색과 향취를 경험하는 데 두려움이 없길 기대하며 조심스레 해외음식 리스트를 적어볼까 한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뭐, 못 먹으면 어떠랴. 한식의 세계화 열풍으로 우리 음식이 세계 곳곳을 파고들었고, 각 나라마다 현지 특징을 가미한 한식도 선보일 테니, 하다가 안 되면 ‘해외 한식탐방’으로 돌려도 무방하리라.
안태정 문화역서울284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