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남미국가연합
입력 2012-03-19 18:20
인류 역사상 무수한 정치적 실험이 이뤄졌지만 가장 중요한 세 가지만 꼽으라면? 왕정에 맞선 민주주의 체제와 자본주의에 맞선 공산주의 체제,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독립을 추구해온 국가 분화 추세를 거스르는 국가 통합의 대표격으로서 유럽연합(EU)을 들 수 있다. 그 중 현재도 실험이 진행 중인 EU의 경우 근대 국민국가가 성립되기 시작한 이래 끝없이 계속돼온 국가의 분화 및 국가간 대결을 통합과 화합으로 돌려놓은 아주 희귀한 사례다.
물론 독립국가연합(CIS) 같은 국가연합체도 있지만 종류와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CIS가 강제적 병합이라는 수단에 의해 형성된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라는 하나의 나라에 속해있던 나라들로 재구성된 것이라면 EU는 당초부터 완전히 별개인 나라들이 자발적으로 하나의 나라에 준하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독특한 EU 같은 정치·경제공동체가 남미에서도 곧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EU를 모델로 2008년 공식 출범한 남미국가연합(UNASUR)이 18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에너지 환경 인프라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지역구도 구축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004년 룰라 브라질 당시 대통령의 주도로 설립된 남미국가공동체를 전신으로 한 남미국가연합의 회원국은 12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이상 남미공동시장·MERCOSUR 회원국),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이상 안데스공동체 회원국), 그리고 가이아나와 수리남이다.
2010년 현재 이들의 인구는 3억9000만명에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약 3조5000억달러. 앞으로 중미와 카리브해 국가들까지 포괄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으며 단일 통화, 단일 의회, 단일 여권 등을 추진하고 있다. 남미국가연합은 앞으로 경제적으로는 EU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이은 세계 3위의 무역블록이 될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EU화(化) 목표연도는 2019년.
EU의 경우 1951년 만들어진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모체로 유럽공동체(EC)를 거쳐 EU로 출범한 것이 1993년, 그리고 단일화폐 유로 유통으로 EU가 완성된 게 2002년이니까 51년 걸린 셈. 이에 비하면 불과 15년 만에 목표를 이루겠다는 남미국가연합의 희망은 너무 ‘야무진’ 감이 없지 않지만 부럽긴 하다. 성사되기만 하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한·중·일 동북아공동체 구축은 언감생심 아닌가.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