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복지지출, 공짜 아닌 공동구매로 인식해야”

입력 2012-03-19 19:29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효화하려면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무효화하겠다’는 내용의 팩스 한 장만 보내면 된다고 하더군요. 다만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엄청난 파장이 불가피하죠.”

장하준(49)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기왕 한·미 FTA가 체결됐으니 그 테두리 안에서 우리나라의 신산업을 육성시킬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와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IN 경제팀장이 나눈 대담을 바탕으로 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신자유주의에 종속된 한국경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진단법이자 대담한 제안서이기도 하다.

“7년 전에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제가 ‘복지국가’를 비전으로 제시했을 때 여야 할 것 없이 웬 뜬금없는 복지 타령이냐고 마뜩잖아 했지요. 그러나 지금 복지국가라는 구호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지배적 구호가 됐지 않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두 가지예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떼어서 생각하지 말고 같이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복지 논의를 하려면 복지의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부자에게 뺏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자는 게 아닙니다.”

장 교수는 “진정한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세금 증액을 통해 복지 예산을 증가시켜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중산층을 비롯한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결단”이라며 “세금을 ‘빼앗기는 돈’이 아니라 ‘같이 쓰는 돈’으로 보고 복지 지출을 ‘공짜’가 아닌 ‘공동 구매’로 보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구매의 장점은 이미 국민건강보험에서 확인됐지요. 개별적으로 약국에서 의약품을 사는 것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 기관이 직접 제약회사와 협상해 구매하는 편이 훨씬 싸지요. 이런 원리는 교육, 노인연금 등에도 적용될 수 있지요.”

그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했을 때처럼 전 국민의 힘을 모아 복지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를 바라보면서 나아간다면, 10년 후에는 이탈리아 수준, 30년 후에는 스웨덴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