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말복] 춤추는 K팝
입력 2012-03-19 18:20
“신명과 흥이 살아있는 곡선의 춤… 오천년 가무민족의 미학과 정신 담고 있어”
작년 봄 학기가 끝나갈 때쯤으로 기억한다. K팝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과 호기심의 증거들이 뉴스거리가 되어 오르내리며 K팝이란 용어가 공공연하게 쓰이기 시작할 때 난 그 용어에 무척이나 고무되었다. K팝이라니 우리가 팝송이 있었나? 학창시절 제대로 번역된 가사도 없이 영어를 한국식으로 발음하며 부르던 소위 미국의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나로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서양 팝송을 부르고 배워서 한국적인 팝을 만들어낸 셈인데 그게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니 대단하지 않은가. 1980년대 말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여러 맥락에서 ‘한국적 상황’ 혹은 ‘한국의’라는 수식어가 내포하는 것이 이류나 삼류를 지칭하던 때완 달리 이제 세계적으로 통하는 것을 알려주는 터닝 포인트 같은 사건으로 느꼈다.
그래서 작심하고 소위 아이돌이 부르는 K팝을 방송에서 찾아보고는 또 한번 놀랐다. 그 좁은 TV 스튜디오에서 한 카메라 앵글에 다 잡히지 않는 열 명 남짓한 가수들이 현란한 춤동작을 복잡하게 안무된 동선에 따라 노래하는 것은 마치 발레를 보는 것 같았다. 가수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하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노래 부르는 순간 뒤에서 비집고 나와 스파트를 받고선 다시 대형으로 돌아가 안무된 전체 형태의 일부로 포즈를 취하고 춤추는 것이 발레 군무 안무의 생태를 닮아 있어서다.
K팝 춤은 대중음악 춤의 유형인데 기교적으로 어렵진 않지만 노래하는 이를 매력적인 존재로 돋보이게 하고 음악에 맞추어 흥을 돋우며 폭넓은 관객들을 시각적으로 사로잡는 데 중점을 두는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동작들이 밝고 세련되게 다듬어져 여흥적이고 장식적이라는 점에서 발레와 공통점을 지닌다.
인터넷에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K팝의 춤을 따라하며 경연을 펼치거나 동남아에서 립싱크를 하며 K팝 춤추는 그룹들, 최근에는 미국의 데이빗 레터맨 쇼나 프랑스의 공영방송에서 한국의 아이돌이 춤을 추며 소개되고 그 춤을 함께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K팝의 두드러진 개성이 춤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의 팝송가수들도 춤을 잘 추지만 그들의 춤과 구별되는 한국 아이돌의 춤은 일단 엄청난 반복 연습이 있어야만 가능한 그룹들의 싱크로 동작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인원수가 같이 하는 군무 효과로 동작의 선과 힘이 강화되어 파워가 증폭되어 보이는 것이다.
발레와 뮤지컬 스테이지 춤이 음악과 함께 즐기는 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이지만 대단히 박력 있어 보이는 K팝 춤의 동작은 운동역학적으로 볼 때 바람에 흩날리는 꽃씨처럼 빙그르르 날아올라 솜털처럼 착지하는 발레리나에 비하면 훨씬 쉽다. 가수들은 발성코드를 보호하기 위해 숨을 멈추고 온몸을 한껏 공중으로 집어던지는 일을 할 수 없고 주로 사지말단의 제스처 동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엔 외형상 드러나는 측면과 본성이 매우 다른 현상이 많기도 한데 강력한 K팝 춤과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발레의 경우도 그 한 예라 하겠다.
이렇듯 한류문화를 선도하는 중심에 춤이 위치하고 있는데 K팝의 근본적인 속성으로 자리 잡은 절도 있고 파워풀한 춤의 진정한 비법은 신명나는 한국 춤의 유전자와 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우리 민족은 역사기록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이웃나라에서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기록되었다. 우리 춤은 구조적으로 사지관절의 굴신에서 일어나는 체간 운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큰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을 탈줄 알면 누구나 좋은 춤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신명과 흥이 살아있는 춤 정신과 곡선적인 춤 미학의 유산이 K팝 춤의 폭발력과 탄성의 원인이 된다. 오천년 가무민족 후예들의 춤과 노래가 작금 21세기에 세계만방에서 인정받고 펼쳐나가니 정말 대한민국 만세다.
김말복 이화여대 교수 무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