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삶의 여유와 유머
입력 2012-03-19 18:20
濯髮飛泉落未收
霜莖飄向海東流
蓬萊仙子如相見
應笑人間有白頭
폭포에 머리 감다 머리털 빠뜨리니
흰 터럭 표표히 동해로 흘러가네
만일 봉래산 신선이 보게 된다면
인간 세상에 백발 있다 웃을 테지
송시열(宋時烈:1607∼1689) ‘영동의 옥계폭포에서(永同玉溪瀑布)’ 송자대전(宋子大全)
우연히 떠오른 작은 생각 하나가 볼 만한 시세계를 열어 놓았다. 냇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털이 빠지기 마련이고, 특히 늙어갈수록 흰머리는 사람을 상념에 젖어들게 한다.
그러기에 이백도 ‘장진주(將進酒)’에서 ‘아침에는 푸른 실 같더니 저녁에는 흰 눈과 같네(朝如靑絲暮成雪)’라고 노래하였고, 고적(高適)도 ‘제야음(除夜吟)’에서 ‘서리 같은 귀밑머리 내일 아침이면 또 한 해’라고 읊었으리라. 그러한 흰머리를 보고 서글픈 감상에 빠지지 않고 유머로 넘긴 것이 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 시의 저자 우암(尤庵) 송시열은 조선 당쟁사의 한 가운데 있었던 분이라 극찬과 혹평이 교차한다. 제자 유명뢰(兪命賚)에게 써 준 각고(刻苦)라는 글씨를 보면 그의 삶에 대한 치열한 자세를 읽을 수 있다. 필치가 험하고 굳세어 저절로 각고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우암이 남긴 상소문과 많은 글들은 대체로 근엄하고 장중하다. 그런 그도 때로 이처럼 유머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유머를 구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만 더 크게 가졌더라면 그에 대한 평판이 더욱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조선의 유자들은 지나치게 근엄하고 경직된 면이 있는데 그 문화적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것 같다. 치열하고 진지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약간의 여유와 유머는 소금과 비타민 같은 존재이다. 자신에게도 그러하지만 남에게는 특히 그렇다. 청나라 때의 소품 작가 장조(張潮)가 ‘유몽영(幽夢影)’에서 “자기를 다스릴 때는 가을 기운을 띠어야 하고 처세는 봄 기운을 띠어야 한다(律己宜帶秋氣, 處世宜帶春氣)” 라고 했는데, 경전의 정신을 잘 반영한 말로 보인다. 남을 대할 때는 특히 화락하게 웃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꼭 봄이 아니라도 세상이 늘 춘삼월 호시절이 아닐까?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