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다문화 학생 더이상 방치 안된다

입력 2012-03-19 18:14


전 세계 170여개국에 거주하는 한인(韓人)은 72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름도 생소한 키리바시, 바베이도스 등 섬나라까지 한인들이 진출해 있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정든 고국을 떠난 사람들과 후손들이 이처럼 많다.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의 대규모 해외진출이 이뤄진 것은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을 꼽을 수 있다. 1960년대부터 광부는 7900여명, 간호요원은 1만1000여명이 독일로 건너갔다. 자원도 재원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인력 수출’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파독 광부들은 매일 생사를 오락가락하며 막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당시 독일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파독 광부·간호사 등과 애국가를 부르다가 얼싸안고 울었다고 한다.

피부색 다름을 인정하고

인력을 수출했던 한국이 이제는 인력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급성장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20만명을 넘는다. 이 가운데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근로자는 80만명에 달한다. 국내에서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면서 다문화가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이는 다문화 자녀 증가로 이어진다.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 학생은 2007년 1만4654명에서 지난해 3만8678명으로 늘었다. 2014년에는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 비율이 1%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탈북자, 중국교포, 러시아교포 등이 유입되고, 사업·학업 등의 이유로 한국에 상주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는 등 한국은 급속도로 다문화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다문화화는 한국이나 일부 선진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05년을 기준으로 세계 인구 35명 가운데 1명이 자신의 국적이 아닌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이 단일민족사회에서 다문화사회로 변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가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방글라데시 출신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학생 이스마엘이 열한 살 때 겪은 사연을 보자.

‘학급에서 가장 재수 없는 아이를 투표로 뽑았다. 28명 중 2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이스마엘을 지목했다. 투표 결과가 나오자 남자아이들이 이스마엘을 교실 뒤로 끌고 가 발길질을 시작했다.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에도 반 아이들의 폭력은 계속됐다. 어느 날 이스마엘은 엄마에게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중략) 이스마엘은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 증세를 보이고 있다. 이스마엘이 폭행을 당한 이유는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것이었다.’(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꿈결). 이 책에는 러시아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다니엘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르다가 급우들에 의해 제지당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고 러시아 사람이니까 노래 부르지 말라”는 식이다.

우리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하면 곤란하다. 그들의 생김새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과학기술부가 최근 다문화 학생들을 소중한 인재로 키우기 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바람직하다. 한국어 교육과정을 정규 과목으로 운영하고, 사전 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예비학교를 확대하는 방안 등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조치다. 이제는 일선 교사와 학생들이 다문화 학생을 각각 제자와 급우로 인정하고 협력해야 한다. 학부모도 자녀를 상대로 다문화 학생을 가족처럼 대하도록 인성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