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정상 안압 녹내장

입력 2012-03-19 18:35


녹내장은 점차 시야가 좁아지다 실명에 이르는 안질환이다. 보통 정상보다 높은 안압(눈 속의 압력)이 시신경을 손상시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에서 이 같은 기존 의학상식이 깨지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녹내장과 달리 안압이 높지 않은데도 시신경이 손상되는, ‘정상 안압 녹내장’이 많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 안압 녹내장은 안압 자체는 정상이나 선천적으로 시신경이 안압에 약하거나 혈액순환이상으로 시신경 자체에 공급되는 혈액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녹내장은 세계적으로 고(高) 안압 녹내장이 70∼80%에 이르고, 정상 안압 녹내장은 10% 미만에 그친다. 그러나 한국녹내장학회의 2011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안압이 높지 않은데도 녹내장이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모른다. 눈의 구조, 시신경이 안압에 견디는 힘, 시신경에 영향을 주는 혈관의 상태가 서양인들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이밖에 시신경유두의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빈혈, 고지혈증, 잦은 시신경유두의 출혈, 편두통, 저혈압, 수족냉증, 야간 저혈압 등도 정상 안압 녹내장 발병에 영향을 주는 위험인자로 지적된다.

정상 안압 녹내장이 무서운 것은 발병 초기에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흔히 안압이 높아질 때 나타나는 두통, 구토, 메스꺼움 등도 정상 수준(10∼21㎜Hg)의 2.5배 이상(40㎜Hg)이 돼서야 느껴진다. 결국 정상 안압 녹내장 환자는 터널 안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졌다고 느끼게 되는 말기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상도 느끼지 못하기 쉽다.

현재로선 일단 파괴된 시신경은 되살릴 방법이 없다. 따라서 정상 안압 녹내장의 치료는 발견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약도 일반 녹내장과 달리 시신경을 보호하면서 혈류 개선에 이로운 것으로 쓴다.

만약 혈류량에 이상이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이후 상태에 따라 레이저 치료와 수술 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능이 저하된 시신경섬유주만 골라 자극하고 주변 조직에는 손상을 주지 않는 ‘선택적 레이저 섬유주 성형술(SLT)’도 많이 사용된다.

녹내장에 의한 실명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기발견 노력이 중요하다. 누구든지 40세 이후에는 녹내장 검진을 받아야 한다. 당뇨, 고혈압 등 생활습관병 환자와 편두통, 빈혈, 저혈압 등 혈류 관련 증상이 있는 사람은 40세 이전이라도 1년에 한 번씩 안과검진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과거 시력교정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녹내장 검사 시 각막두께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시력교정을 위해 각막 일부를 깎은 경우 검사 시 측정된 안압이 실제 안압보다 낮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홍영재 누네안과병원 녹내장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