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순례자] (27) 붉은 여우의 탄식
입력 2012-03-19 18:21
크흐흐흐흑!
저 원수들이 유유히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네.
그 동안 몇 번이나
태클을 걸었건만
넘어질 때마다 저것이
주여 주여 하니까
저 원수가 일으켜 주더라고(시 37:24).
저것은 원래
내 포로였는데
저 원수가 빼앗아 가더니(엡 2:2-5)
둘이 십자가에서 하나로
연합되었다면서(롬 6:3-5)
도무지 떨어질 줄 모르네.
거친 태클도 소용없고
달콤한 유혹도 소용없네.
오히려 저 벌거벗은 것이
더 똑똑해지고 강해지기만 했네.
저 성큼 자란 것 좀 봐.
그 꼬맹이던 것이.
꼬맹일 적에 단숨에
다시 끌어왔어야 했어.
크흐흐흐흑!
분하고 원통해!
절대로 포기 못 해!
나, 붉은 여우야. 사탄이야.
울부짖는 사자야(벧전 5:8).
저 원수를 끝내 이길 순 없다만
궤휼과 심술은 날 당할 자 없지.
거짓의 아비라고(요 8:44).
난 알아. 저 벌거벗은 것이
무엇에 약하고 힘을 못 쓰는지.
그걸 집중 공격하는 거야.
저 원수의 신중한 점을
노리는 거야.
저 원수는 벌거벗은 것의
요구를 그때 그때 들어주지 않고
신중하게 뜸을 들이더라고.
연단이니 인내니 절제니
거룩이니 경건이니 소망이니 하면서.
그게 무슨 대수라고.
저것이 힘들어하며 불평하는
꼴이란... 가관이지.
불쌍해서 어쩌나.
그런데 저 벌거벗은 것이
커갈수록 나는 왜 점점
초라해지는 거지?
크흐흐흐흑!
그림·글=천안 낮은교회 홍혁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