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인문학] 종교개혁 순교 역사의 생생한 기록자 존 폭스 (下)

입력 2012-03-19 18:21


스데반 순교부터 ‘피의 메리’ 종교탄압까지 역사를 남기다

폭스는 ‘순교자 열전’을 에드워드 6세가 통치하던 1552년에 쓰기 시작해 평생 동안 네 번에 걸쳐 개정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에 머물던 1554년에 이 책의 가장 초안이라 할 수 있는 책을 라틴어로 펴냈다. 이 책은 ‘종교개혁의 샛별’ 위클리프와 그를 추종하는 롤라드파의 박해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에는 폭스 당시의 종교 박해와 순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폭스는 망명지에서 영국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박해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 벌어지는 박해와 순교 이야기를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결심했다. 1559년 그는 피의 메리 시대에 자행된 박해와 순교 이야기를 포함한 두 번째 책을 라틴어로 바젤에서 펴냈다. 그러나 예상만큼 메리 튜더 여왕 시대의 박해와 순교는 본격적이지 못했다. 영국과 떨어져 있던 그가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증언과 자료들의 한계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 책을 통해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륙에서 거주하던 영국 상인들이 이따금 보내 주는 후원에 의지해 살았다. 겨우 생존만 할 수 있는 극빈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순교자 열전’의 개정 작업을 멈출 수 없었다. 모국에서 박해와 순교가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계속해서 수집해 나갔다.

1558년 피의 메리가 죽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올랐다. 폭스는 곧 바로 귀국하지 못했다. 가족들과 함께 귀국할 수 있는 경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국으로 귀국해 이전의 제자였던 노퍽 공작의 도움으로 런던에 정착할 수 있었다.

폭스는 1563년 3월 20일에 존 데이 출판사에서 첫 번째로 영어판 ‘순교자 열전’을 출간했다. 이 책은 커다란 대형 2절판의 책으로 1800쪽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 책에는 증언들과 목격담 그리고 고백 등 그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이 포함되었다. 책에는 ‘이 위험한 마지막 날들의 활동과 기념비’ 즉 ‘Actes and Monuments of these Latter and Perilous Days’라는 말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붙어 있었다.

당시에는 책에다 긴 제목을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러나 폭스는 긴 제목을 통해 특히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로마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박해와 끔찍한 사건들을 기술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리고자 했다. 현재 이 책의 이름은 원제목보다 ‘폭스의 순교자 열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출간은 폭스를 순식간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 책은 최초로 영어로 쓰인 유명한 문학작품이다. 이 첫 번째 영어 판본의 머리말에서 폭스는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위클리프 또는 코프햄이 용기있게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대의를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들이 태어났다는 것조차 기억할 수 있었겠습니까. 보헤미아의 후스와 우리의 틴데일이 복음의 대의를 위해 그들의 삶을 지키는 것보다 삶을 잃는 것을 선택했을 때 당신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반대로 당신의 적대자들을 보면, 당신의 백성을 향해 수많은 살해와 불의 그리고 학대가 있었습니다. 같은 사람들에 의해 은밀하고도 사악하게 수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것은 모두 다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일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리라고는 결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책값은 결코 싸지 않았다. 숙련된 장인의 3주치 임금에 해당하는 10실링 이상으로 팔렸다. 그러나 폭스는 여전히 가난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는 새로운 증언과 자료들을 수집해 계속해서 책을 개정해 나갔다. 폭스의 ‘순교자 열전’이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가톨릭 측의 비판과 반발도 거셌다. 로마 가톨릭 사제 토머스 하딩은 책에 대해 “악취가 풍기는 순교자들의 거대한 똥더미이며, 수천의 거짓으로 가득 찼다”고 비판했다.

폭스는 이런 비판에 맞서 가톨릭 측에 카운터펀치를 날리고자 두 번째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더 많은 자료들을 수집했고, 분명치 않은 것은 제거해 자료의 정확성을 꾀했다.

개정 증보된 두 번째 판은 1570년에 나왔다. 두 번째 개정판이 거의 완성판이라 할 수 있다. 폭스 생전에 이루어진 세 번째 개정판과 네 번째 개정판은 판형들의 변형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폭스가 했던 작업들은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작업이었다. 폭스가 죽은 이후에도 유럽 대륙에서 박해와 순교가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람들에 의해 ‘순교자 열전’은 계속해서 개정되었다.

폭스가 1583년에 마지막이자 네 번째로 개정한 ‘순교자 열전’은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성서에 나오는 스데반, 큰 야고보, 작은 야고보, 빌립, 마태, 마가, 베드로, 바울 등 초창기 기독교인들의 박해와 순교를 다루는 것으로 시작해, 네로 황제 시대에 극에 달했던 로마 시대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열 차례의 박해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중세 교회에서 행해졌던 이단 심문과 종교재판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그러나 2권 이후부터는 기독교가 영국에 전래된 것으로부터 시작해 영국의 왕조사와 더불어 종교 박해 부분을 다루고 있다. 특히 제 7권에서는 헨리 8세 통치하에 행해진 롤라드파의 박해와 순교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12권에서는 피의 메리 시절 잔혹하게 저질러졌던 박해와 순교의 사건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폭스의 ‘순교자 열전’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60개의 목판화가 풍성하게 함께 들어있다. 이 목판화는 너무나 생생하게 순교자들이 어떻게 처형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폭스는 ‘순교자 열전’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유명해지자 부유한 사람들이 그에게 기부를 해왔다. 그는 그것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었다. 1563년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많은 목회자들이 신도들을 버리고 도피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 자리에 남아 소외된 이들을 도왔다. 부자들에게서 기부금이 오면, 그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썼다. 그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요구하면 절대 거절하지 못하는 너그러운 사람으로 알려졌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마음과 행동에 탄복해, 그를 ‘우리의 아버지 폭스’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1587년 4월 18일 70세를 일기로 폭스는 성 자일즈 교회에 묻혔다. 그가 이 교회에서 얼마간 교구 목사를 지낸 인연이 작용했다. 폭스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순교자 열전’을 통해 박해와 순교의 현장을 계속 지켜보고 있다.

그가 기록한 순교의 역사는 교황, 왕, 고위 성직자 등 종교권력자의 박해의 역사이다. 기독교인들은 왜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오로지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불의한 종교 권력자에 빌붙으면 목숨을 부지하고 호화롭게 잘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사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에 따라 살 때만 영원히 산다. 그것을 폭스의 ‘순교자 열전’은 시대를 넘어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러한 증언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이동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