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라운지-배병우] 기름값에 조바심 내는 미국
입력 2012-03-18 19:15
미국에서 며칠만 살아봐도 실감나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한국의 구두와 같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한 얘기다.
워싱턴특파원으로 7년 만에 다시 미국에 살게 되면서 도올의 핵심을 찌른 비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대도시 중심부가 아닌 이상 차 없이는 도대체 생활이 불가능한 곳이 미국이다. 미 대통령 취임사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미국식 생활방식’이라는 게 바로 자동차에 기반한 문명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솟는 휘발유 가격은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 12일 현재 미 평균 휘발유소비자가격은 갤런 당 3.83달러로 올 들어 16%나 올랐다. 기자도 중형차 연료탱크를 채우는 데 60달러가 훨씬 넘게 드는 것을 보고 ‘미국에서도 저렴한 기름 값 시대는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난 13일 발표된 뉴욕타임스·CBS 여론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한 달 새 50%
에서 41%로 급락했다. 여기에도 휘발유를 비롯한 연료 값 상승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를 대선을 앞둔 공화당이 놓칠 리 없다. 밋 롬니와 뉴트 깅그리치 등 주요 대선 후보들이 유가 상승을 막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다. ‘오바마 집권 이후 휘발유 가격이 2배가 됐다’는 게 단골 메뉴다. 공화당원인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지난해 미국 유가와 휘발유 값 상승률이 150년래 최고 수준이라는 내용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과장됐거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게 정치 전문 인터넷신문 ‘폴리티코’의 분석이다. ‘오바마 집권 후 휘발유 값 급등’도 세계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부시 행정부 시절 휘발유 값 상승률이 127%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반쪽 진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휘발유 값 상승이 유권자들에게 중요하지만 표심을 크게 흔들 요인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실업률로 대표되는 경기상황과 대선 후보자의 자질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담이 큰 쪽은 당연히 오바마 대통령이다. 특히 이란 사태가 시한폭탄이다. 이란 사태 악화와 국제 유가의 ‘관리’ 실패는 현 오바마 대선팀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