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순정적 인간 내면을 보는 듯… 백자 달항아리 소재·작품 전시 2곳

입력 2012-03-18 18:12


“너무나 순정적이어서 마치 인간이 지닌 가식 없는 어진 마음의 본바탕을 보는 것 같다.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 미술사학자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백자 달항아리를 두고 쓴 글이다.

백자 달항아리는 몸통 중간이 약간 뒤틀리고 기우뚱해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완벽함보다는 인간적인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옛 사람들의 검소하고 소박한 심성이 담겼다. 그래서인지 미술 작가들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장르와 재료는 다르지만 달항아리의 정취와 감성을 살린 작가들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관심을 모은다.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빌딩 1층 일우스페이스(02-753-6502)에서 5월 2일까지 계속되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달님이시어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추어주세요)’ 전에는 회화 조각 사진 도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 작가 9명의 달항아리 작품 50여점이 출품됐다. 전시 제목은 백제 가요 ‘정읍사’ 가운데 달과 관련된 부분에서 따왔다. 도예가 강민수와 성석진은 크고 둥근 순백색의 달항아리 도자기를 선보이고, 사진작가 구본창은 박물관에 소장 중인 달항아리를 촬영한 작품을 내놓았다. ‘생활일기’를 주제로 작업하는 한국화가 석철주는 달항아리에 꽃과 풀이 새겨진 작품을 전시하고, 미디어영상 작가 이이남은 달항아리와 매화가 어우러진 영상작품을 설치했다.

조각가 정광호는 구리 선을 활용해 달항아리를 형상화한 작품을, 판화작가 정헌조와 사진작가 조성연은 각각 독창적인 작품을 내걸었다. 서양화가 최영욱도 순백의 달항아리 그림을 출품했다. 흔히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한다. 은은하고 고고한, 너그럽고 온화한, 단순하고 강렬한 달항아리를 통해 삶의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 갤러리(02-541-5701)에서는 도자기를 그린 이진용 작가의 개인전 ‘수집된 시간(Time Collected)’이 4월 22일까지 열린다. 극사실 기법으로 고서와 여행가방, 카메라와 같은 골동품을 그리던 작가는 이번에 한국의 도자기들을 주제로 작업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세월의 흔적과 때가 묻어 있는 것들에 흥미를 가져 수집을 시작했다.

최근 4년 동안에는 각종 도자기를 모아 그림으로 옮겼다. 시간이 흘러도 그 투명함을 잃지 않는 도자기는 가장 한국적이고 보존돼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수려한 조형미와 은은한 색채감을 살린 도자기 그림 50여점을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그림 옆에는 모델이 된 실제 도자기도 함께 전시된다. 캔버스 안팎의 도자기 작품들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