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페리클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입력 2012-03-18 18:02
세계의 시선이 그리스로 쏠리고 있다. 민주주의, 철학 같이 익숙한 말들을 창안했고 사상, 예술, 제도 다방면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룩해 서양 사람들로부터 문명의 요람이라 칭송받는 아득한 고대의 영광 때문이 아니다. 지금 세상의 눈길은 영광스런 과거가 아니라 극심한 경제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현재의 그리스를 향해 있다.
5년에 걸쳐 계속된 경기 침체로 그리스 전체 기업의 4분의 1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회사들 가운데 절반이 임금 지불 능력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방대한 규모의 국가 부채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파산의 위기에 대처하는 그리스 정부의 모습은 마치 곡예를 보는 듯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리스에 쏠리는 세계의 시선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국가 부도를 막아 줄 자금을 대출해주는 채권자들이 그리스 국민에게 요구하는 사항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트로이카라 부르는 채권자 삼총사,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은 방만한 정부 지출을 크게 줄이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나 재정 긴축,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그럴듯한 용어가 숨기고 있는 현실은 대량 해고와 20% 삭감된 최저임금, 의료, 교육을 비롯한 공공 서비스 분야의 마비다. 싹둑 잘린 임금을 받는 그리스인은 그나마 다행이다. 20%로 치솟은 실업률이 말해주듯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거나 그동안 모은 돈에 의지해 근근이 버티는 그리스인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곧 이 돈마저 다 쓰고 나면 어떤 운명이 그들에게 닥칠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1년 상반기 그리스인 자살률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50%까지 치솟은 25세 이하 청년실업률이다. 세계의 언론이 전하는 그리스 청년들의 실상은 참혹하다.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고급 호텔에서 버젓이 일했던 한 청년이 어느새 노숙자 신세가 되어 거리를 헤매거나 미래의 의사나 엔지니어가 될 젊은 인재들이 그리스를 떠나 잘사는 북유럽 국가로 이주하는 사태는 일부 예에 지나지 않는다.
가공할 수준에 달한 그리스 청년들의 실업 사태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생계 수단이 없다는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청년들의 미래는 그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가 지속될 경우 그리스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가벼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그러나 기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채권자 삼총사를 필두로 신자유주의의 추종자들은 그리스의 위기를 복지국가 모델과 철저히 결별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 이들은 정부의 덩치와 역할이 줄어들고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워지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경제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긴축 정책은 경제를 죽일 수도 있는 극약 처방이 된다는 이치는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도 짐작할 수 있다.
위기 극복할 지도자는 어디에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를 최고의 수준으로 이끈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파르테논 신전 건설 같은 공공사업을 벌여 위기를 이겨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소수의 위인들이 세상을 좌우하고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신뢰를 상실했다.
그러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개인의 역할을 사소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낸 믿음과 절망의 반복을 우리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는가? 페리클레스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비단 그리스인만은 아닐 것이다.
김용우 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