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내가 불쌍하다고?
입력 2012-03-18 18:02
비교적 ‘잘 먹고 잘 사는’ 내 친구들 기준에 의하면 나는 가장 불쌍한 사람 중 하나다. 이른바 3무(無)의 여인이기 때문이다. 없는 것 세 가지는 딸, 여형제, 이모란다. 인생 100세 시대의 여자 일생에 가장 힘이 되는 세 사람이 없으니 친구들이 돌봐줘야 하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냥 웃고 넘기지만 나름 애정이 실린 이 말에 슬쩍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를 입증하는 증거 사례는 당장 내 어머니가 제공한다.
어머니는 속상함을 토로할 때 “얘, 딸이 없으면 어떻게 할 뻔했니. 이런 얘길 누구한테 하겠어!”라며 말문을 여신다. 바쁘다는 소릴 입에 달고 다니는 잘난 아들에게는 전화도 잘 못하신다. 웬만하면 통화가 안 되는데다 비서가 가로채 맨날 회의 중이거나 출장 중이라는 것. 집으로 할라치면 며느리 눈치가 보인단다. 내가 대신 전화를 걸어드릴 때도 있다.
증거는 또 있다. 하나뿐인 내 아들 녀석과는 벌써부터 말도 섞기 힘들다. 새벽에 나가 잘 때나 들어오는 녀석이 하는 얘기는 출퇴근 시 “다녀오겠습니다”, “저 왔어요”가 다다. 친구들은 한 술 더 뜬다. 장차 며느리에게 잘 못 보이면 손주도 안 보여주고 생일날 미역국도 못 얻어먹는다는 거다.
이러니 딸 없는 내 노후가 훤히 보인다. 게다가 집안 경조사도 함께 챙기고 아무 때나 영화나 쇼핑도 같이 할 여형제, 엄마보다 더 전폭적인 사랑을 준다는 이모도 없으니 말이다. 반 우스개로 시작한 얘기는 결국 “그러니 바쁘다 말고 친구들과 부지런히 놀면서 노후 대비를 잘하라”는 협박 반, 충고 반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내 주변에서 예상했던 일의 전조현상이 감지되고 있다는 거다. 결혼적령기인 아들에게 “결혼하면 새 식구와 정도 들일 겸 1년만 같이 살자”고 운을 띄워 봤더니 ‘별 이상한 소리를 다 하시네’ 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엄마, 그 친구가 싫어해요” 하고 받아친다. 그렇지,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그러니 대표적 내유외강의 인간인 내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뻔하다. 게다가 내가 지닌 ‘스펙’도 그렇고 일생 ‘씩씩한 우리 엄마’로 비쳐졌으니 엄살을 부린들 녀석은 “엄마, 평소 하던 대로 하세요” 할 것이다. 그럼 나는 “어머니는 자식이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대는 것이 불필요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평소 해온 말을 되뇌면서 아들로부터의 심리적 독립을 완성할 것이며 여전히 씩씩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는 또 다른 얘기다.
요즘 나는 ‘덜 씩씩한 사람’으로 변신 중이다. 가끔 아픈 척도 하고, 화도 웃어가며 내야지, 친구들이 전화하면 목소리 한껏 높여 수다도 떨고…. 하지만 제 버릇 어디가나. 한동안 잘 나가다 쌓은 걸 졸지에 다 까먹곤 한다. “어색하다 얘, 생긴 대로 살아.” 한 친구가 고소한 듯 깔깔댄다. 습관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말, 틀린 거 아니라며….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