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난관리, 매뉴얼만 있으면 뭐하나

입력 2012-03-18 18:05

핵안보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대형 재난사고가 잇따라 터져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고리 원전 정전사태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내 최대규모의 보령 화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여수 엑스포 국제관에서 불이 났고, 난지 물재생센터에서도 가스가 폭발했다. 하나같이 국가기반시설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

최근 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보면 철저하게 사람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국가경제가 고도화되면서 재난에 대비한 시스템은 상당한 수준으로 갖춰졌다. 시스템을 지탱하는 매뉴얼도 선진국 수준으로 확보됐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을 체크하고 매뉴얼을 이행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감독을 하되 치밀하지 않고, 점검을 하되 건성으로 한다는 이야기다.

고리 원전의 경우도 시스템이나 매뉴얼은 제대로 돼 있었다. 비상발전기 작동을 놓고도 이중삼중으로 점검하도록 했다. 그러나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도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고는 “점검 당시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식으로 발뺌을 한다. 이런 부실 점검의 배경에는 공기업 특유의 매너리즘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보령 화력발전소 사고도 마찬가지다. 전체 화력의 8%를 차지하는 대규모 발전소이다 보니 유사시에 대비해 자체 소방대를 운용하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갖췄다. 그러나 자체 소방대가 용역업체 직원들을 주축으로 구성되다보니 의용소방대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들이 자체 소방장비로 불길을 잡지 못해 소방서에 신고하는 데 27분이 걸렸다니 오히려 잘못된 시스템이 화를 부른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시스템만 선진국 흉내를 냈을 뿐 이행 수준은 후진국에 머물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9월 초유의 정전대란 때 사실을 은폐하다 화를 자초해놓고도 6개월 만에 고리에서 똑같은 행태를 보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번 불신을 받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정부는 조직의 투명성을 확보하면서 시스템 이행을 담보할 방책을 조속히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