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말라리아·결핵… 경제난 그리스, 이젠 ‘후진국형’ 질병까지

입력 2012-03-16 23:28

긴축 재정으로 공공의료 예산이 삭감되면서 그리스에 에이즈와 말라리아, 결핵 등 후진국형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 국민들이 의료 지원에서도 소외돼 치명적인 질환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에이즈는 특히 주사기를 이용하는 마약중독자들 사이에 크게 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그리스지부에 따르면 아테네의 마약중독자들 중 에이즈 감염자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2.5배 늘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에이즈 환자의 폭증 원인이 주사기를 교환하지 않고 재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단체 책임자 파라도폴루스는 “재정압박으로 무료 주사기 교환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취소되면서 주사기를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에서 발생한 것과 같이 어머니에서 아이들로 전염되는 사례도 처음으로 목격됐다”고 말했다.

또 1970년대 박멸된 것으로 알려졌던 말라리아가 처음으로 그리스 남쪽 지역에서 발병하는 등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 말라리아는 남부 그리스에서 100건 정도가 파악됐고, 다른 지역 20∼30곳에서도 확인됐다. 특히 2010년에는 모기를 통해 주로 전염되는 ‘나일 열병’으로 3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이민자들 사이에 결핵 환자가 급증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그리스 공중보건의료 분야가 이처럼 취약해진 것은 이 부문에 대한 과도한 예산 삭감 때문이다. 그리스 정부는 병원지원 예산을 40% 줄이는 등 공공의료 재정 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난으로 민간의료보험을 해지하는 국민들이 늘면서 공공의료 수요는 오히려 24%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의료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은 줄이는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그리스 공공의료 체계는 사실상 붕괴직전인 것으로 국경없는 의사회는 파악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주로 지진, 전쟁 등 재난 현장의 구호활동에 주력해 온 국경없는 의사회는 그리스에 대해서는 공공의료 지원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17년간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한 후 3년 전 고국인 그리스로 돌아온 파라도폴루스는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의 공공의료 실태는 심각한 압박을 받는 상태”라며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이 연대감이 워낙 단단하고 사회단체나 봉사활동 등을 통해 서로를 돕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