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3대 거장들과 ‘즐거운 조우’… 피정환 대표 수집 미술품 ‘꿈을 품은 화가들’ 전시

입력 2012-03-16 18:25


서울 신길동의 신동시장을 운영해온 피정환(56) 대표는 30여년 전 불안증 때문에 인사동 부근 병원을 다니다 우연히 들른 화랑에서 전시를 보고 미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었다. 그때부터 돈만 생기면 그림을 샀다. 딸의 피아노 구입비와 자동차를 사기 위해 들어둔 적금을 그림 사는 데 써버리기도 했다.

동양화에 관심이 많은 피 대표는 운보 김기창(1913∼2001), 내고 박생광(1904∼1985), 고암 이응노(1904∼1989) 등 한국의 서정이 깃든 그림을 주로 샀다. 달에 한 점 정도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을 기준으로 투자 개념보다는 그저 그림이 좋아 구입했다. 그렇게 모은 작품이 300여점이고, 수집한 미술자료도 8000여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운보의 1960년대 작품 ‘바구니 여인들’은 90년대 초반 한 표구점에서 구입한 것이다. 당시 감정서도 없이 사들인 피 대표는 이후 지인 소개로 운보의 아들 김완씨를 만나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자 김씨가 “충북 청주 작업실에서 수년 전 도난당한 12점 가운데 1점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 전 장물의 공소시효(10년)가 지났다”고 밝혔다고 한다.

피 대표의 소장품 가운데 김기창 박생광 이응노 세 거장의 시대별 작품을 모아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4월 1일까지 ‘꿈을 품은 화가들:한국미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연다.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익살과 해학이 담긴 김기창의 작품과 화려한 오방색이 특징인 박생광의 작품이 각각 11점, 문자추상으로 유명한 이응노의 작품 15점 등 총 37점을 선보인다.

피 대표는 “소장품을 전부 돈으로 환산하면 아파트 한 채 값 정도(10억원) 될 것”이라며 “한국화의 경우 가격이 바닥을 쳐 10년 전에 2000만원 주고 산 작품이 지금 1500만원밖에 하지 않더라”며 웃었다.

한때 그림 수집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인과 함께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게 취미라는 그는 “언젠가 미술관을 세우거나 소장품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