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굿바이, 브리태니커!
입력 2012-03-16 17:57
‘SINCE 1768’.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조 영조 44년이다. 다산 정약용이 여섯 살 되던 해다. 이 까마득한 옛날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나왔다. 12월 첫 권이 나온 후 1771년 3권으로 완간됐다. 이후 명성을 쌓으면서 32권까지 늘어났다가 15일 종이책 발행의 중단을 선언했다. 20년 전 디지털 버전을 만들 때부터 예상된 일이지만,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것 같아 섭섭하다.
224년 역사를 자랑한 백과사전은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에서 나왔다. 18세기 출판업의 발흥기에 두 곳의 입장은 대립했다.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달랐다. 잉글랜드는 서적업자들 주도로 시장을 키워간 반면 스코틀랜드는 개방적인 출판을 지지했다. 앙숙이었다.
브리태니커가 자유로운 스코틀랜드 출판의 산물임은 엉겅퀴 로고에서도 알 수 있다. 에든버러 성을 침공하는 바이킹족의 엉덩이를 찔렀다는 설화에 기대 아예 문장(紋章)으로 삼고 있다. 황량한 들판에서 가시로 스스로를 지키며 꽃 피우는 모습은 그들 시련의 역사를 상징하는 동시에 잉글랜드에 맞서는 스코틀랜드인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한창기와 윤석금이 유명하다. 브리태니커 한국지사를 설립한 한창기가 “나이가 몇 살이건, 고향이 어디건, 어느 학교를 나왔건,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을 때 윤석금이 들어가 54개국 최고의 세일즈맨에게 주는 벤튼상을 받았다. 이후 한창기는 ‘뿌리깊은 나무’를 중심으로 전통문화의 복원에 힘썼고, 윤석금은 출판업을 바탕으로 굴지의 웅진그룹으로 성장했다.
브리태니커의 천적은 인터넷이었다. 그 중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로 만들어지는 위키피디아였다. 브리태니커 인쇄를 중단하던 날, 두 사이트를 방문했더니 역시 달랐다. 위키백과의 ‘브리태니커’ 항목은 이랬다. “가장 오래된, 영어로 쓰인 백과사전이다. 2012년 3월 15일 종이책 출판이 224년 만에 중단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브리태니커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배너 광고만 요란했다.
푸른 빛깔의 장정 속에 금박으로 빛나던 엉겅퀴 꽃.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던 지식의 거인 브리태니커 인사이클로피디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찾아가며 지식의 세계에 빠져들던 그 시절이 그리울 것 같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