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⑥ 1.5인칭 공동체 언어… 시인 심보선
입력 2012-03-16 18:40
1인칭 ‘나’를 2인칭 ‘너’로 돌려줄 수 있는 당신이란 존재에 눈뜨는 ‘타자에 관한 시’
심보선(42) 시인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이다. 유학 시절, 그는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에서 온 좌파 급진주의자’로 불렸다. 그뿐 아니다. 그의 시편에서 찾아낸 자기 자신에 대한 진술에 따르면 그는 ‘지상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 지상을 태우고 남은 자’이며 ‘키 크고 잘생긴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던’, ‘크게 웃는 장남’이자 ‘해석자’이며 ‘고독한 아크로바트’이다. 그리고 이 모든 호칭과 술어에 대해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라고 슬쩍 꼬리를 빼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나’에 대한 모든 호칭과 술어 속으로 사라져 ‘너’라는 2인칭으로 스며들기에 심보선의 시는 위치한다.
“나는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흙 길 위에/ 누군가 잔가지로 써 놓은 ‘나’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그 누군가는 그 말을 쓸 때 얼마나 고독했을까요?/ 그 역시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거나/ 홀로 나아갈 지평선을 바라보며/ 땅 위에 ‘나’라고 썼던 것이겠지요./ 나는 문득 그 말을 보호해주고 싶어서/ 자갈들을 주위에 빙 둘러 놓았습니다./ (중략)/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반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나’라는 말’ 부분)
‘나’라는 1인칭 언표 자체를 제목으로 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나’라는 1인칭을 ‘너’라는 2인칭으로 돌려줄 수 있는 ‘당신’의 존재에 주목함으로써, ‘나’를 둘러싼 생의 고독과 슬픔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눈뜨게 한다. ‘나’에 대한 시라기보다는, 1인칭을 2인칭으로 바꿔줌으로써 존재의 전이를 가능하게 하는 ‘당신’이라는 존재에 눈뜨는 ‘타자에 관한 시’인 것이다. 자기중심이 아닌 타자중심으로 영혼을 옮겨가는 것. 이를 두고 그는 “다른 감각, 다른 추구를 통해 일상 속에 내가 있을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하는 일, 그것은 타인과 맺는 ‘비밀의 나눔’이다”라고 말한다.
‘비밀의 나눔’은 프랑스 소설가 모리스 블랑쇼가 공동체를 설명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블랑쇼는 “가장 개인적인 것은 한 사람이 간직한 자신만의 비밀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개인이라는 테두리를 부수고 나눔을 요구하며, 나아가 나눔 자체로 긍정되기 때문이다”(‘문학의 공간’ 이달승 옮김)라고 설파했다. 타인과 나누는 비밀이란 홀로 있을 때는 얻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라는 상대방과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성립 가능한 게 비밀이다.
시도 홀로 있을 때는 얻어지지 않는다. 늘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수반해야 얻어지는 것이 시이다. 하지만 한발 짝 더 들어가면 목적에 종속되고 더 밖으로 나가면 다시 개인이 되니까, 그런 긴장을 안고 경계에 선 사람들을 일컬어 그는 1.5인칭 공동체라고 명명한다. 심보선은 세상이란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나, 그들과 나, 타인과 나라는 관계 속에서 지탱된다는 사회학적 원리를 문학으로 실천해보이고 있다.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 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중략)// 나는 어쩌다보니 살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쓰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나는 홀로 깨달을 수 없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인중을 긁적거리며’ 부분)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