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첫사랑이 불쑥 나타나 집 지어 달란다면 당신은?… 애틋한 첫사랑의 추억, 영화 ‘건축학개론’

입력 2012-03-15 18:32


“실제 첫사랑의 기억이 영화를 찍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건 함께 거닐었던 길이나 봄볕, 바람, 함께 들었던 음악 같은 것들인데 그룹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기억에 남아 있고요.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먹먹한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13일 열린 시사회 후 주연 배우 한가인(30)이 밝힌 것처럼 영화 ‘건축학개론’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한 여자가 스무 살 시절 만났던 첫사랑의 상대를 15년이 지난 후 찾아가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첫사랑’과 ‘건축’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접목시킨 로맨틱 멜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첫사랑의 추억을 회상하는 구성으로 현재의 주인공 서연과 승민을 한가인과 엄태웅이, 스무 살의 서연과 승민을 배수지와 이제훈이 각각 맡았다. 이번 작품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가수 배수지(18)는 “첫사랑이 있다면 그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첫사랑, 어서 나타나 주세요”라고 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생기 넘치지만 숫기 없이 순박한 건축학과 신입생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반한다. 함께 과제를 하면서 차츰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승민은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고백을 마음속에 품은 채 작은 오해로 인해 서연과 멀어지게 된다.

15년의 세월이 흘러 제주도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는 승민 앞에 서연이 불쑥 나타난다.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승민에게 서연은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 달라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작품으로 서연의 집을 짓게 된 승민. 집을 완성해 가는 동안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를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영화 속 과거 배경은 1990년대 중반으로, 삐삐와 헤어 무스 등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나는 아이템들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또 서울 정릉에 사는 서연에게 교수가 “정릉이 누구의 무덤이냐?”고 묻자 “정종 임금인가? 아니면 정조? 그도 아니면 정약용인가?”라고 답하는 등 곳곳에 웃음과 유머를 배치했다.

‘불신지옥’(2009)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을 내놓은 이용주 감독은 건축공학과 출신으로, 승민과 서연이 함께 집을 짓는 동안 기억의 조각을 맞추고 차츰차츰 현재의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잘 접목시켰다. 그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듯이 집을 지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 멜로의 구조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승민과 서연의 과거 장면에서는 정릉의 한옥 빈집이, 현재 장면에서는 제주도에 위치한 서연의 오래된 집이 첫사랑의 추억을 완성해가는 공간이다. 새로 짓는 집은 인생의 새로운 출발지를 의미한다. 과거 속에는 당시 청춘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테마곡으로 흘러 애틋함을 더한다.

영화를 보면서 15일 종영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한가인과 아역의 연기 비교 때문일 것이다. 사실 영화는 ‘해를 품은 달’처럼 한가인보다는 과거 배역이 더 커 보인다.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30대 중반을 한가인이 자연스럽게 소화했지만, 스무 살의 서연을 풋풋하고 상큼하게 연기한 ‘배수지의 발견’이라고나 할까. 22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