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왜 망설이나
입력 2012-03-15 18:21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9년 8월부터 2년간 매월 280만원씩 청와대에 상납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최근 청와대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 인멸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발언이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이영호 전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이 장 전 주무관의 입막음용으로 2000만원을 건넸다가 최근 되돌려 받았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는 것이다.
장 전 주무관의 폭로가 관심을 끄는 것은 내용이 너무나 구체적이라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청와대 상납액수, 시기, 전달자가 분명하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한 쪽은 검찰수사로 밝혀진 국무총리실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라는 결론이 나온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검찰 수사에서 별다른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은 이 전 비서관이 무슨 이유로 장 전 주무관의 입을 막으려고 시도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컴퓨터를 없애라고 증거인멸을 지시한 청와대 전 행정관은 뭘 믿고 그런 일을 했는지 석연치 않다. 한마디로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국민적 궁금증이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데도 수사를 맡았던 검찰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검찰의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를 깡그리 무시하는 주장이 난무하는데도 사실과 다르다든지, 수사를 다시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침묵하니 국민들은 장 전 주무관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검찰의 곤혹스러움을 모르지 않는다. 수사를 다시 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기존 수사의 졸속을 인정하는 것이고,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것은 검찰 스스로 부실수사라고 자인한 뒤 재수사에 나서는 길이다. 민주당도 정치 공세만 하지 말고 하루빨리 고소장을 제출하기 바란다.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엔 이번 사안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