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택 (8) 돌아온 탕자의 ‘회개기도’… 내 인생 AD를 열다
입력 2012-03-15 17:43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짓만 해왔어요. 하나님! 정말로 잘못했어요.”
차를 몰고 혼자 집으로 가면서 나는 마구 외쳤다. 회개기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한참을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나는 잘 나갔다. 돈도 벌 만큼 벌고, 실력도 인정받았다. 갈수록 인기가 치솟아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았다. 누가 봐도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그뿐인가. 반듯하고 내조 잘하는 아내와 예쁘게 자라주는 두 아이가 있는 가정도 행복했다. 외견상 내게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은 그게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싹을 틔운 외로움이 점점 자라나 내면에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활동 무대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돈을 벌면 벌수록, 작곡한 노래의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외로움은 더 나를 짓눌렀다. 그 외로움을 달랜답시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전도사님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에는 와이퍼도 무용지물이었다.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차창으로 나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지난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어릴 때 교회에서 신발 흩뜨렸던 일에서부터 불과 한 시간 전 심야의 파티를 즐기려고 했던 일까지 기억 속에서 다 떠올랐다. 지금까지 잊고 지냈던 잘못한 일들이 놀랄 만큼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깥에 쏟아지는 비처럼 내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차를 길가에 세우고 그냥 울었다.
그런 뒤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집에 도착했다. 마치 만취 상태에서 필름이 끊긴 것처럼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집 앞까지 와서 초인종을 누르니 “누구세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누구긴 누구야. 나지” 했을 테지만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빵점짜리 시험지를 받아온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야. 성경책 어디 있어? 성경책 좀 줘봐.”
성경책을 어디에 뒀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아내가 건네주는 성경책을 받아들고 나는 서재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피아노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의자나 소파에 앉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는 끝없이 떠오르는 죄 때문에 울며 기도했다. 난생 처음으로 눈물에 온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흘러내리는 눈물이 뜨거웠다.
얼마나 회개의 눈물을 쏟아냈을까, 이번에는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다. 내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 감사했다. 충분히 내칠 수도 있었지만 다시금 자신의 품으로 안아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다. 허망한 생활을 그만두고 바르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이 죽도록 감사했다.
사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였다. 음악을 한답시고, 예술가랍시고 온갖 겉 멋을 부리면서 그야말로 ‘똥폼’을 있는 대로 잡고 다녔다. 일을 마친 뒤 집으로 가기보다 여기저기 즐길 곳을 찾아 다녔다. 양심에 조금 찔리기라도 하면 ‘직업상 많은 유혹을 받게 돼 있다’고 자위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고 그냥 마지막 종을 쳤어도 나로선 아무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을 보내셔서 다시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니 그 감사함이 가슴에 사무쳤다. 비로소 내 인생의 BC가 마감되고 AD가 열리는 시점이었다. 죄로 얼룩진 내 인생을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는 때였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정리=정수익 선임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