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미희의 마실] 길은 기도 속에 있다

입력 2012-03-14 18:29


삶이 결코 호락호락한 것임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겪게 되는 별별 일에 어쩔 수 없이 허둥거리게 된다. 자신이 잘못했건 그렇지 않건 언제든 진창에 나가떨어질 수 있는 게 삶이다. 불행은 몸을 숨기고 있다 방심하는 사이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지게 만든다. 그러니 어찌 오늘 안녕하다 해서 내일이 평안하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하긴 삶이라는 게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실패하거나 진창을 헤매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누가 자신의 삶을 그렇게 힘들게 아등바등 살고 싶겠는가. 다 우아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은 것을.

남의 이야기 같던 불행 닥쳐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냥 욕심내지 않고 조용히 소임만 다한다면 크게 어려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나중에는 교원 연금도 받을 테고, 때가 되면 그간 성실하게 납부한 국민연금도 받을 수 있을 테니 노후 걱정이 없었다. 동창이나 친구들이 명퇴를 하고, 회사로부터 가해오는 은근한 압박에 어찌해야 할까, 털어놓는 고민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였다. 친구들의 그런 고민을 들을 때마다 그 사람은 소신껏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인생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휴일이면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골프를 하며 활기찬 여생을 위해 건강관리를 했고, 그의 부인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넓은 집으로 옮겨갈까 궁리를 했다.

삶은 그렇게 흘러갈 줄 알았다. 헌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니던 대학이 부실대학으로 몰리면서 폐교되었고, 그는 졸지에 교단을 잃어야만 했다. 더욱이 그 지인은 안타깝게도 20년을 채워야 받을 수 있는 교원 연금도 필요한 햇수를 채우지 못해 자격에서 제외됐다. 그것도 단 두 달이 부족했던 것이다.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지인은 당연히 연금만 믿고 따로 노후준비를 챙기지 못했다.

여느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한창 공부하고 크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그럴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둘. 아들은 대학 2학년생이었고 딸은 이제 고등학생이었으니 그만큼 돈 쓸데도 많았다. 게다가 집을 늘려가면서 은행으로부터 받은 융자금은 지인의 목을 눌렀다. 퇴직금이라야 은행 융자금에 미치지도 못했다. 하지만 다달이 들어가는 이자부터 해결하자며 은행 빚을 갚고 나니 그야말로 수중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다들 나이를 부담스러워했고, 한때 자랑스러웠던 경력은 짐이 되었다.

그는 술로 하루하루를 탕진했다.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그렇게 자신을 내몬 사회가 원망스러워 분노만 쌓여갔다. 술은 늘었고, 시도 때도 없이 터뜨리는 분노에 지인들은 하나둘 떠나갔다.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그를 피하면서 원망과 분노는 더해갔다. 결국 과한 음주와 분노 때문에 지인은 급작스럽게 몸이 상했고 병원신세까지 져야했다. 그런 지인이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는 차 한 잔 하자고 했다. 오랜 만에 만난 지인은 병세가 깊었다. 내 얼굴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제는 편해졌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그는 그저 모든 것이 화가 나기만 했다고 했다.

하나님 영접하고 찾은 안정

헌데 누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에게 기도를 해보라고 권했던 모양이다. 처음엔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약이 말을 듣지 않자 슬그머니 병원 옆에 있는 교회에 나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접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자 신기하게 몸도 나아지고, 갈 길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대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면서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뒤늦게나마 기도의 힘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건강하기라도 해서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소망이었다. 그 소망이 참으로 소박하고 장하지 않은가.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때임을 그 지인은 잠깐의 방황을 통해 안 것이다.

은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