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임미정] 아이들의 눈동자
입력 2012-03-14 17:57
몇 년 전 캄보디아에서 어린이 중창단의 노래를 들었다. 수백 명의 가난한 어린이들이 매일 점심을 먹으러 센터에 왔고, 담당 선생님은 그 지역에 온 음악 선생님을 통해 노래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중창단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은 노래를 배우는 게 즐거웠고, 몇 달 뒤에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되니, 그 동네 어린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경험이었다.
내가 센터를 방문한 시점은 그들의 한국 공연 이후였다. 우리의 방문은 그들에겐 중요한 행사였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70년대처럼,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란 늘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창단 어린이들은 우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속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밖에서 구경하느라 어수선했다.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인해 그날의 기억은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그 다음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어린이들은 조금 더 자랐고 다시 그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첫 번의 느낌과 달리 뭔지 모르는 슬픔이 있었다. 음악 선생님이 한국으로 귀국해 아이들은 음악지도를 받지 못했고, 화려했던 서울 공연 이후 해외여행은 없었다. 어린이들의 맥없는 표정은 오랫동안 내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할 때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좋을까? 당장 편안하고 희망을 가지도록 해주고, 상대가 행복해하는 것을 같이 행복해하고, 내가 가졌으면 하는 것들을 상대에게 주는 것 등이 우리가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도움의 뜻이리라. 하지만 우리는 남을 도울 때 좀 더 조심스럽고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내가 자선의 마음을 느끼기 위하여 남들을 불쌍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가 한번 생각 없이 준 경험들이 그들에게 지속할 수 없는 것이어서 좌절감을 안기게 하는 것이 아닌지, 한 가지를 도와준다면 그 다음 과정까지가 잘 계획되어 있는지, 우리의 우월감과 그들에게 괜한 의존감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1963년생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구호급식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 59년생인 동료교수님 한 분이 63년생 이전과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의식적으로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구호급식은 본인에게 수치스런 기억이고 무의식이지만 심리적 상처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심각한 기아 때문에 생명 자체의 존재가 힘든 상황을 비롯해 일단 무조건 베풀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의 가장 가난한 동네들에서도 맑고 즐거워 보이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항상 있다. 훨씬 더 미래에 그들이 성인이 된 후 찬찬히 기억할 우리나라 NGO 종사자나 선교사들의 손길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임미정(한세대 교수·하나를위한음악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