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얼빠진 조직으로 원전 관리 하다니

입력 2012-03-14 17:55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1호기에서 지난달 9일 오후 8시34분부터 12분간 전력공급이 완전히 끊기는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원전 운영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무려 한 달 넘게 이를 은폐해오다 12일에야 원자력 안전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다는 점이다. 사소한 사고라도 바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돼있는 원자력안전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고리1호기 원자로는 정비기간이라 정지상태였지만 고온의 잔열이 남아 냉각수를 돌리는 전원이 끊길 경우 노심이 녹아내리는 최악의 사고를 불러 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별도의 전선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 전원 2개 라인, 비상 디젤발전기 2대, 예비 비상발전기 1대가 갖춰져 있다. 이번 사고는 내부 차단기를 실수로 한꺼번에 끊은 바람에 즉시 가동돼야할 디젤발전기가 먹통이었고 최후의 보루였던 비상발전기 마저 작동하지 않아 발생했다.

불과 1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당시 한수원측은 비상 전원이 잘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는 블랙아웃은 절대 없다고 큰 소리쳤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김종신 한

수원 사장은 언론에 원전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일 오후 바로 사고가 터졌는데도 김 사장은 한 달이나 지난 10일에야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았다. 아직도 이런 얼빠진 조직이 원전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이런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원전수출국이란 자부심에 상처를 입히며 원전반대론자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곧 열리는 핵안보 정상회의를 앞두고 야권은 원전정책 전면 재검토를 외치고 있다. 원전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맞든 틀리든 블랙아웃을 무시한 한수원의 처사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원전은 효율적이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다. 당국은 이번 사고의 원인 및 은폐 경위 등을 명백히 가려 관련자를 엄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