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 첫 개인전 ‘꽃의 말을 듣다’ 여는 소설가 윤후명 “그림은 내게 새로운 발견, 자아의 확대”
입력 2012-03-13 19:42
“패모(貝母)라는 꽃이 있어요. 백합과의 초본식물인데 언젠가 TV에서 본 ‘차마고도’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마방(馬幇)들이 언덕에 올라가 패모를 뜯던 장면이 있었지요. 아이를 못 낳는 여자에게 특별한 효험이 있어 비싼 값으로 팔리기도 한다는 패모를 화분에 심어놓고 집에서 키우고 있지요. 쳐다볼수록 신비한 느낌을 주는 꽃이지요.”
오는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화가로서 첫 개인전 ‘꽃의 말을 듣다’를 여는 소설가 윤후명(66)씨는 13일 꽃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꽃, 하면 먼저 ‘아름답다’는 말이 앞서면서 다른 말들을 가려버리게 되잖아요. ‘아름답다’의 ‘아름’도 ‘ㅇ’과 ‘ㅏ’의 밝은 어울림과 ‘ㄹ’의 굴러가는 매끄러움으로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쁘되 아픔을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꽃 그림을 그렸어요.”
올해로 등단 45년을 맞은 중견작가인 그가 그림에 입문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다. “처음엔 혼자 화랑에 다니다가 몇몇 화가들과 사귀게 되면서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지요. 2007년부터 몇몇 단체전에 참가하면서 이젠 문학과 그림을 겸업하게 됐지요. 문학에서 그림으로 넘어온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나’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림은 제게 새로운 발견 내지 자아의 확대 같은 것이지요.”
그는 “그림은 뭔가 나타나는 게 있으니까 글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글처럼 머리를 싸매고 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이 있는 것 같다”며 “기왕이면 글과 그림의 뿌리가 같은 데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두 분야가 모두 삶의 근원이나 열정 같은 것을 건드리고 있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저는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존재 양식을 그리고 싶어요. 존재 양식에 대해 글로 접근하는 방법은 오래 해온 일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00여 점의 작품이 걸린 이번 개인전엔 유난히 엉겅퀴 그림이 많이 전시될 예정이다. “몇 년 전 간에 큰 문제가 생겨서 술을 완전히 끊었어요. 그때 처방해준 약병에 보니까 엉겅퀴가 그려져 있더군요. 엉겅퀴의 어떤 성분이 간에 약효가 있다는 것인데, 그걸 보면서 오래 전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답사를 갔다가 지천으로 피어있던 엉겅퀴가 떠오르더군요. 엉겅퀴는 제게 있어 특별한 재생의 식물이지요. 꽃 색깔도 핏빛처럼 선명하잖아요.”
그간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받은 그는 전시회 개최에 맞춰 ‘꽃의 말을 듣다’라는 같은 제목의 소설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