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복에 십자가 착용 금지 ‘논란’… 해고 英여성 2명, 정부 상대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
입력 2012-03-13 19:03
근무복 위에 십자가를 착용했다가 해고된 영국 여성 2명이 정부를 상대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영국 정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원고들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의견을 내기로 해 영국 교계가 반발하고 있다.
브리티시 항공에 내근직으로 일하던 나디아 이웨이다(58)는 2006년 제복 위에 작은 십자가 목걸이(사진)를 걸었다가 해고당했다. 엑시터의 한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셜리 채플린(56)도 십자가 목걸이를 벗으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해고됐다.
이웨이다는 영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0년 항소법원에서 패소하자 채플린과 함께 유럽인권재판소에 다시 제소했다. 회사 측 조치가 신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유럽인권협약 9조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CNN이 입수한 소송문건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조만간 열릴 재판에서 “신앙과 양립하지 않은 근무수칙에 직면한 피고용인들은 사직하거나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유럽인권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또 십자가 착용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조건이 아니므로 공개적인 십자가 착용은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 방침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교계가 들끓고 있다. 한 기독단체는 “흑인이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정부 주장은 매우 적대적”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십자가 착용이 기독교 규칙에 없다고 금지시킬 수 있다면 종교 계율에 포함되는 터번이나 히잡은 금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영국 성공회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지난 11일 미사에서 “십자가 자체는 종교적 장식이 됐다”고 발언해 파문이 확산됐다. 대주교의 대변인은 “십자가를 대상 자체로가 아니라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일 뿐 소송과 관련한 언급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영국 교계에서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모호한 말을 할 때가 아니다”면서 “많은 이들에게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라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비난했다.
영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최근 동성 결혼 문제로 영국 및 로마 가톨릭 교회와 마찰을 빚고 있는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정권의 정체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건이 처음 불거질 당시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 총리는 브리티시 항공에 재검토를 권유했다. 현 정부 내에서도 노동당 출신 트레버 필립이 위원장으로 있는 평등인권위원회는 두 여성을 지지하고 있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