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강변에 원전 있다 한강변에도 가능한가?… 후쿠시마 사고 1년, 국내 원전 정책 현주소
입력 2012-03-13 21:56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들과 사고를 당한 일본은 가동 중이던 원전을 폐쇄 또는 중단하는 등 원전 정책을 재검토 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한국 정부는 안전성을 강화하면서 기존 원전확대 정책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원전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경제성, 안전성, 청정성 등에 대한 반론이 최근 거세지고 있다. 무엇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소와 방법을 확보하는 과제, 원전 입지를 둘러싼 갈등 해소방안이 걸림돌이다. 이와 함께 국내외 원전사고에 대비한 환경방사능 모니터링 시스템도 살펴본다.
원자력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과제가 올해 대선 쟁점의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달 16일 민주통합당의 전·현직 국회의원 33명이 ‘탈핵(脫核)-에너지전환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출범시킨 데 이어 한명숙 대표가 탈원전 대열에 동참했다. 그는 12일 “원자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신재생, 대체에너지에 국가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진보당은 지난달 19일 올해를 ‘탈핵원년’으로 정하고 2040년까지 모든 국내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내용의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후쿠시마 이후 원전의 위상=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은 “후쿠시마 사건을 참고로 삼아 안전성을 강화하면 된다”는 것으로 정리됐다. “전력예비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대안이 없다”는 현실론이다. 지난 2월 22일 이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원자력을 폐기하면 전기료 40% 인상이 불가피하며 국가적으로 15조원의 에너지 비용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원전을 현재 운영중인 21기에서 35기로 늘리겠다는 내용의 ‘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10∼2024년)’을 그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에는 40기의 원전이 가동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현재 전체 전력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량을 2024년까지 48.5%, 2030년까지 59% 수준으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이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선정됐다.
환경단체와 야당은 세계적 흐름에 우리나라만 역행하고 있다며 비판의 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의 세계는 그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성 측면에서 추가 안전대책비, 정책 경비, 사고 대응비 등 숨은 비용이 표면화하고 있다. 그동안 상당수 경제학자는 원전의 경제성을 의심치 않고 안전성만 확보된다면 원전을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재난수준의 사고 등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위험비용도 돈으로 환산해서 반영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그럴 경우 원전의 비용은 적어도 화력발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진다는 게 지난해 말 일본 정부의 결론이다.
◇2가지 걸림돌=결국 방사성폐기물 처리와 원전 및 폐기물처리장 부지확보라는 2가지 난관이 가장 크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동사례가 없는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의 안전성이 얼마나 확보될지, 얼마나 돈이 들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가장 큰 변수다. 이것이 원전의 안전성은 물론, 경제성에도 불확실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반핵 물리학자 다카기 진자부로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라고 불렀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설 예정인 경북 경주는 지금도 안전성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2008년 8월 착공된 방폐장은 2012년 1월 완공예정일이 2번째로 연기됐다. 애초 2009년 6월 완공예정이었지만 2011년 12월로 30개월 늦춘데 이어 이번에 다시 공기기가 18개월 더 연장됐다. 지하수가 많은 지하 자갈층을 포함한 취약 지반문제를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규원전이 들어설 예정인 삼척과 추가로 원전이 건설될 경북 울진 주민들의 반대도 심상치 않다. 특히 새로 선정된 지역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이다. 정부에 따르면 2016년에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삼척지역의 한 환경운동가는 “올 초 삼척시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제2원자력 연구원’이라는 애매모호한 사업계획이 있다”며 “고준위 방폐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차별의 기술, 서화동핵(西火東核)=한강하구에도 원전 건설이 가능한가. “나라에서는 백날 깨끗하고 안전하다고만 선전하는데 그러면 서울에 지을 것이지 왜 삼척에 지으려고 하나.” 반핵 집회에서 나온 삼척주민의 목소리다. 님비현상이라고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은 지역차별, 세대간 차별 등 인간차별을 전제로 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먼저 원전이 생산한 전기는 생산지가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에서 주로 쓴다. 우리나라의 전력생산은 충남(전체의 24.9%), 경북(14.9%), 전남(14.4%), 경남·인천(각 13.2%)이 거의 대부분을 맡는다. 반면 전력소비는 발전량이 오히려 적은 지역에서 훨씬 크다. 발전량 비중이 1.8%인 경기도가 전체 전력의 21.4%, 0.3%인 서울이 10.9%를 소비해 전력소비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송전탑이 많이 필요한 이유다. 원자력발전소 등 발전단가가 싼 발전소부터 가동해서 그 전기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송전해야 하니 고압송전선로가 필요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송전과정에서 전기의 30%가 사라진다.
불균형은 발전량뿐 아니라 발전원별 발전소의 위치에서도 심각하다. 원자력발전소는 경남, 경북, 전남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의 신규 건설계획까지 따지면 그 중에서도 경남·경북의 집중도가 더 커진다. 어쨌든 지금 서해안 쪽에는 화력발전소, 동해안 쪽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돼 있다.
원자력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프랑스는 다르다. 프랑스 원자력청(CEA)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 19개 원자력 발전소, 58기의 발전용 원자로가 5개의 큰 하천 및 대서양 해변을 따라 골고루 분포돼 있다. 수도 파리 근교의 세느 강변에도 예외 없이 원자력발전소가 있다.
한국 정부가 원전의 안전성을 그토록 확신한다면 한강 하구나 서울 한강변에 원전을 건설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송전 및 송전설비 건설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를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원전을 건설하는 대신 전력 요금의 대폭 인상과 전기 다이어트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마땅하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