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하나님은 선하시다-⑧ 정정숙 박사 이야기 (上)

입력 2012-03-13 18:17


1996년 1월 어느 날, 남편은 들고 있던 테니스 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커피 잔을 놓치기 시작했다. 몸이 축 늘어졌다. 이상했다. 종교개혁 전문가인 남편이 박사논문을 마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목 디스크 아닐까’ 생각하며 병원에 갔다. 근위축증. 불치병이란다. 청천벽력.

이후 남편이 불러주는대로 컴퓨터를 쳐 줬다. 천신만고 끝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호남신대에서 임용제의가 왔다. 잠시 귀국해 가르쳤지만 그 사이 근위축증이 급속히 진전돼 12월에는 두 손을 다 쓰지 못하게 될 정도가 됐다. 다시 미국에 돌아온 남편은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8년간 투병생활을 해야만 했다. 마지막 5년 동안은 24시간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호흡기를 부착하고 튜브를 통해서 유동식 음식을 공급받았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상태. 남매를 둔 단란한 가정에 순식간 어둠의 짙은 그늘이 내려졌다.

아내는 스러져가는 남편을 보면서 ‘이 고통 잘 견디고 나면 하나님의 선물이 있을거야. 하나님이 반드시 남편을 일으켜 영광의 도구로 세울거야’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끝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교적 오래 생존했다. 통상 근위축증에 걸린 사람의 70∼80%가 3년 내에 죽는다. 남편은 처음 3년간은 걸어 다닐 수는 있었다. 그러다 24시간 병석에 눕기 전에 3일간 금식기도를 했다. 먹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의 남편은 “하나님께 마지막 간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도하다 완전히 쓰러져 버렸다. 이후 33일간 모든 기능이 마비됐다. 자연적으로 호흡을 하지 못했다. 의식만 남았던 남편은 계속 기도했다고 한다. “이제 당신 앞에 갈 준비가 됐으니 제 영혼을 받아주세요.”

기도를 하자 마치 스크린에 영상이 비치듯 자신의 지난 삶의 모습들이 지나갔다. 태어나서부터 병실에 있는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잘 한 것 보다 후회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았다. “하나님, 그만 보여주세요. 너무, 너무나 부끄러워요.”

급성폐렴까지 왔다. 병원에서는 장례식 준비를 하라고 했다. 한국에서 형님 등 가족들도 왔다. 아내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나님, 이렇게 끝나는군요. 결국.” 그런데 거의 의식만 남아 있던 남편이 모기소리로 말했다. “여보, 내가 살아야겠어.”

하나님이 보여주신 스크린 앞에서 남편은 눈물로 기도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더.” 땀이 베개를 흥건히 적셨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33일 동안 식물인간처럼 있던 남편이 의식을 차렸다. 급성 폐렴도 사라졌다. 비록 24시간 누워있어야 하는 병상의 삶이지만 남편에게 제 2 인생이 시작됐다.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천국은 반드시 있어! 잠시 사는 이 세상 떠나 천국 들어갈 때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해.”

미국 뉴저지에 본부를 둔 가정 사역단체 ‘패밀리 터치(Family Touch)’ 원장 정정숙(52) 박사와 남편 고 정태두 박사 이야기다.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