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정치인과 식언

입력 2012-03-13 18:27

“정치인들은 자신이 말한 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는 것을 보면 화들짝 놀란다.” 프랑스의 영웅 샤를 드골의 말이다.

이와 유사한 프랑스의 정치 풍자 유머 한 가지. 정치인들을 태운 버스가 절벽에서 한 농부의 밭으로 굴러 떨어졌다. 농부는 죽은 정치인은 물론 부상한 정치인까지 땅에 묻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해 “생존자는 없었느냐”고 묻자 농부는 “몇몇은 죽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모두 묻어버렸다”고 답했다. 경찰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왜 그랬느냐”고 질문하자 농부 왈, “정치인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 아닌가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자주 한다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하기야 기원전 1600년경에 세워진 은(殷)나라 탕왕이 하(夏)나라 걸왕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면서 “백성들이여 나를 도우라, 그러면 큰 상을 줄 것이다. 나는 절대 식언(食言)하지 않는다”고 했다니 역사도 꽤나 오래됐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면, 권력욕이 강했던 이완용의 경우 경쟁자가 먼저 한일합방을 주장하자 한때 반대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부임하는 일제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가장 먼저 만나는 기회를 잡자 합병안에 찬성해 나라를 팔아넘기는 일에 앞장섰다.

‘철새 정치인’과 함께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정치인의 식언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있는 요즘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말 뒤집기 달인’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해군기지다. 한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총리자리에 있으면서 “한·미 FTA는 우리 경제를 세계 일류로 끌어올리는 성장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래의 대양해군을 육성하고, 남방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랬던 한 대표가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추진하면서 한·미 FTA 전면 반대, 제주 해군기지 건설 중단으로 말을 바꿨다. 여기에 그친 게 아니다. 역풍을 의식해서인 듯 “안보 차원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또 말을 바꿨다. 이러니 한 대표의 진심이 과연 무엇인지,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건 아닌지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의 말 한마디는 매우 중요하다. 지도자의 경우 더욱 그렇다. 말을 자꾸 뒤집으면 정치는 뒤틀어지고, 국민들은 고통 받는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