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하여

입력 2012-03-12 18:39


하늘에서 찍은 강정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포구를 적시는 바다는 쪽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구럼비 해안의 경관은 들쭉날쭉 자연스러운 경관을 자랑했다. 이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길이 150m에 이르는 너럭바위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은 “맨발로 걸어보면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그 위에 누우면 몸을 감싸주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바위에서 고개를 들면 멀리 한라산 영봉이 보이고, 바다와 산 사이에 강정마을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지금 해군기지 건설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름답지 않은 자연은 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고향도 강정에 모자라지 않았다. 봄의 야산은 진달래로 붉게 물들었고, 논자락엔 자운영 무리가 영롱한 자태를 뽐냈다. 여름 시내는 은빛 비닐을 펄럭이며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넉넉히 품었다. 가을의 들녘은 황금빛으로 넘실댔고, 겨울 송죽의 설경은 새들도 탐을 낼 지경이었다. 작은 촌락은 성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서로 기대며 수백 년 역사를 단란하게 이어왔다.

그 평화롭던 고향 마을이 10년 전에 사라졌다. 하류 쪽에 댐을 만들면서 물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모두 반대했다. 시위도 많이 했다. 고향의 삶을 대체할 곳은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다. 출향민들도 주말에 내려와 피킷을 들었으나 일요일 오후면 다들 떠났다. 늙은 주민들은 지쳐갔다. 애초에 쌈질을 잘 못하는 데다 논일이 눈에 밟히니 힘이 달렸다. 무엇보다 명분이 짓눌렀다. 인근 도시민의 식수가 모자란다는 데….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보상금을 손에 쥐고 뿔뿔이 흩어졌다.

해마다 5월 첫째 토요일이면 고향 사람들이 만나 망향제를 연다. 물속에 잠진 고향의 옛터를 바라보노라면 땅이 푹 꺼질 정도로 허허롭지만 그게 현실인 걸 어떡하랴. 마을을 덮은 저 물이 또 다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엄중하다. 마을을 비운 곳에 물을 채움으로써 대처 사람들이 세수하고 그 아들딸의 기저귀를 씻는다니 마냥 가슴 아파할 수도 없었다. 공동체의 대의(大義) 앞에서 소리(小利)는 숨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강정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주민들은 편이 나뉘어 있고, 시위대도 두 쪽이다. 그 사이에 경찰이 서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비행기로 부산하게 오르내리며 싸움을 부추긴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평화를 위해서 싸운다고 말한다. 한쪽은 제주의 평화, 나라의 안보를 위해서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왠말이냐고 한다. 누가 진짜 평화주의자일까.

책임지는 주체의 판단이 중요

강정마을의 문제는 천혜의 구럼비 해안을 살리는 일과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일 사이의 이익형량으로 압축할 수 있다. 자연파괴를 따지자면 독도를 떠올리면 좋겠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지만 경비임무를 위해 경찰초소의 시설물을 보강하고, 접안시설을 새로 들여도 시비 걸지 않는다. 독도 지배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 자연보호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해군기지의 안보적 가치라는 명분이다. 사실 이 부분을 놓고 보통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기는 쉽지 않다. 해양주권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전략은 고도의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한 정권 차원에서 끝날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시위현장에서 웃통을 벗어 제치는 종교인의 고함보다는 기지 건설을 책임지는 집단의 판단이 우선이라고 본다.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풋내기 여대생의 어설픈 구호보다 바다와 함께 평생을 살아온 해군 제독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