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꿈을 걷는다

입력 2012-03-12 18:21


“평생을 산다는 것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이다.” 반 고흐의 말이다. 지독한 가난과 처절한 고독의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을 식힐 줄 몰랐던 천재 화가, 별의 화가 반 고흐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평생 가슴속 꿈을 향해 걸어간 고흐의 그 별은 어디에 있을까, 어느 별이었을까를 곰곰 생각하다 문득 내 마음 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별 하나가 떠올랐다.

42년 전인 1970년, 나는 대전의 한 중학교 학생이었다. 당시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그해 여름 일본 후지 산에서 열리는 제 1회 세계 보이 스카우트 잼버리에 한국대표로 참석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한 주간의 대회참석과 일본 정부후원의 3주간의 일본 관광은 중학교 1학년 어린 소년에게는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심어 주었다. 해외여행을 전설처럼만 여기던 시절, 처음 가본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모습에 나는 놀랐다. 단지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이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3주간 체험한 일본의 문화는 단연 어린 소년의 가슴에 큰 반향을 심어 놓았다.

이 일본여행 후 나는 당시 다니던 학교의 교지에 방문기로 글을 한 편 썼다. ‘내가 본 일본’이란 제목으로 일본 거리들의 깨끗함, 일본 문화의 정숙함, 그리고 일본인들의 타인에 대한 배려와 극진한 친절함을 본 대로 느낀 대로 표현하며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일본을 좀 더 배워야 한다고 나름 힘주어 말했던 글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짧은 일본방문의 아쉬움을 표현하며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좀 더 오래 일본에 체류하며 일본에 대해 더 많이 알고싶고 더 많이 배우고싶다는 어린 마음의 꿈도 표현했던 것 같다. 이 글 이후 나는 갑자기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친구들과 심지어는 일부 선생님들에게서도 왕따가 되고 만 것이다. 하루아침에 내 별명은 ‘친일파, 쪽○○’가 되었고 그 이후 오랫동안 학교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인간이란 환경에 적응하며 순응하는 동물인가 보다.

이 일 이후 나는 내 머릿속에서 일본이란 단어를 점점 지우고 말았고 일본에 대해 배우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평범한 보통 한국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우연히 책을 읽다 발견한 반 고흐의 말 한마디가 42년간 묵혀놓고 밀쳐놨던 가슴속 별 하나를 깨우고 말았다. 그래, 42년 전 나에게도 걷고 싶던 별이 하나 있었지. 일본문화를 좀 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던 어린 소년의 꿈, 일본 정원들이 가지고 있던 그 고요한 정숙성에서 느꼈던 알지 못할 가슴속 평안함의 추억들. 그 문화의 뿌리를 탐색해 보고 싶다는 어린 소년의 묵혀 놓았던 꿈의 씨앗이 놀랍게도 42년이란 세월더미의 잔재 속에서 아직도 살아 꿈틀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느낌이 증발해 버리기 전에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다음 학기는 미국 유학이후 15년 만에 처음 가져보는 안식년. 이 소중한 기회에 일본에 몇 달이라도 가서 어린 시절의 그 추억들을 더듬어 보고 일본 문화의 정수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봐야지. 작지만 소중했던 꿈속의 별을 걸어 보아야지. 나는 그 날로 신촌에 있는 일본어학원 새벽반에 등록을 했다. 50대 중반 나이에 외국어 학습이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히라가나, 가타가나부터 열심히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더 게을러지기 전에 잠재워 놓았던 가슴속 작은 꿈을 실현해 보고 싶었다. 이 작은 꿈을 실현시키면 내 가슴 속 큰 별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면서.

인생을 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깜깜한 밤하늘의 별을 보면 된다고 한다. 고흐는 가슴 속의 별을 가졌기 때문에 외롭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고, 민족시인 윤동주는 그 혹독하고 암울한 시절 밤마다 별을 헤며 미래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다. 2000여 년 전 작은 팔레스타인 마을의 청년 예수도 마음 속 별을 그리며 사순절 골고다의 길을 기꺼이 걸을 수 있었다. 여러분의 별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목회상담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