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이어도

입력 2012-03-12 18:25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이청준의 1974년 소설 ‘이어도’는 이렇게 시작한다. 해군이 동원된 2주간의 수색 작전이 ‘이어도는 없다’며 종료된 직후 동행했던 제주 남양일보 천남석 기자가 실종되자 뒤처리에 나선 해군 정훈장교 선우 현 중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주도를 찾은 그는 이어도란 술집에서 이어도 민요를 구성지게 부르는 천남석의 여자를 만난다. 천의 집에서 그녀와 재회한 선우 중위는 그녀가 어릴 때 부모와 오빠를 이어도에 잃었지만 섬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천의 아버지도 풍랑 속에서 생환한 뒤 이어도를 봤다며 다시 배를 타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부르다 숨졌다. 선우 중위가 뭍으로 돌아간 지 열흘쯤 뒤 섬에서 천의 시신이 발견된다.

소설은 이어도의 지리적 실체를 규명하기보다 신화가 인간의 고된 현실과 엮이는 모습을 그렸다. 이상향이면서 동시에 죽음과 이별의 상징인 이어도로부터 섬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한 존재임을 제시했다.

소설과 달리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서남쪽으로 149㎞ 떨어진 수중에 실존하는 암초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가 가벼운 암초 접촉사고를 당해 본국 해군성에 보고하면서 ‘소코트라 암초’로 세계해도에 올랐다. 우리나라는 51년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탐사에 나서 파도 속에 드러난 모습을 확인하고 ‘이어도’라 새긴 동판을 물속에 가라앉혔다. 87년 해운항만청에서는 이어도 부표를 설치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해양수산부는 95년부터 조사를 실시해 2003년 6월 해저 40m 암반 위에 수상 해양과학기지를 준공했다. 이어도 기지에는 헬기착륙장 기상타워 등대 등이 설치돼 있다.

최근 중국이 이어도가 자신들의 관할이라며 정기순찰을 하겠다고 밝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이어도는 중국 서산다오(余山島)에서 287㎞, 일본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떨어져 있다. 이어도는 3국 모두의 200해리(370㎞) 배타적 경제수역 범위 안에 있지만 중간선을 취하면 우리 수역에 들어온다.

더구나 우리 정부가 수중 암초는 영토로 주장할 수 없고, 수역 획정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공식 표명하고 있는데도 관할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도발이다. 국제법과 별개로 이청준의 소설처럼 이어도가 오랜 세월 제주 어민들의 삶의 일부였음은 중국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