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술이 막 익었기에

입력 2012-03-12 18:27


이 작품은 조선 전기 시인 박은이 오랜 벗 택지에게 술 마시러 오라고 보내는 시이다. 택지는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자이다. 산촌 은둔 선비의 집에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찾아오는 이 없는 외진 초가는 적막한 만큼이나 마음마저 썰렁하다.

비가 오기에 딱히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무료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다. 이때 부인으로부터 새 술이 막 익었다는 말이 들려온다. 그것 잘되었다.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혼자 마시는 술도 그만의 맛이 있으려니와 함께 잔을 기울일 마음 맞는 벗이 있다면 오랜만에 솟은 흥이 더욱 도도할 것이다. 적적하던 초가에는 아연 생기가 돈다. 얼른 먹을 갈아 한 붓에 시를 적어 벗을 초대한다. 이런 편지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지 않을 사람이 몇 있겠는가? 벗도 마침 목이 간질간질하던 참이었으리라.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참 기쁘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저 유명한 공자의 말씀이다. 이때 공자가 기쁘다고 한 것은 공부하는 벗끼리 만나 토론하는 학문의 즐거움을 말한다.

하지만 성인이 아니고서야 벗과 만나 기쁜 일이 공부뿐이랴.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막 뚜껑을 연 술 한 잔을 하기 위해 벗을 부르거나 벗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당나라의 시인 백낙천(白樂天) 역시 새 술이 익자 벗에게 시를 보내어 초대했다.



오랜 벗에게 문득 전화를 걸어, 새로 발견한 조촐한 선술집이 있노라고 말하고픈 날이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硏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