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후회하지 않는 선택의 행복
입력 2012-03-12 18:11
나는 연초에 왔던 안면마비가 아직도 2∼3% 정도 남아있다. 의사는 100%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어색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내가 안면마비에 걸린 것은 연말에 너무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과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로의 과로가 겹친 상태에서 신년축복성회 집회를 마치고 마지막 날 외부 손님을 배웅하러 바깥에 나갔다가 찬바람을 맞은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런데 그 날 밤이라도 잠을 푹 잤으면 좋았는데 그 다음날 새벽에 또 조찬기도회 모임을 나간 것이 더 큰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웬만하면 주최 측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하고 모임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꼭 그 모임에 나간 이유가 있다. 그것은 조용기 목사님이 설교를 하러 오시고 내가 사회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 하나님이 크고 귀하게 쓰시는 지도자가 오시는데 당연히 영접을 하고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몸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새벽에 나가 사회를 보았다. 사실 나를 치료했던 주치의가 말하기를 그 날 밤이라도 잠을 푹 자고 쉬었으면 평소 나의 체력으로 보아서는 안면마비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큰 지도자를 존경하는 마음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나갔기 때문에 아픔을 겪은 것이다. 그로인해 3주 이상을 설교를 못하고 얼마나 은둔과 고독의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 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 순간이 온다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왜냐면 그 때의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통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고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행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님은 신학생 시절부터 내 마음의 큰 바위 얼굴이었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지도자였다. 물론 그 분도 인간인데 어찌 온전할 수 있겠는가. 때로는 부정적인 소리를 들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아니 존경을 넘어서 신학생 시절부터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나는 지도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이 있다.
한국교회는 너무 지도자를 끌어내린다. 조그마한 흠만 있어도 넘어뜨리려고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후 영원히 못 돌아왔지만 남왕국 유다는 다시 고토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민족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눈물로 기도하고 일깨우는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지도자를 존경하고 세우는 마인드로 전환해야 한다. 지도자도 내 마음에서 선택하고 정하기 나름이다. 사실 지도자가 부분적으로 존경할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되지 않겠는가. 우리 모두 지도자를 존중하고 세우는 분위기를 만들자. 결코 돌을 던지고 비난하고 고발하는 꼼수 문화를 가지고는 희망이 없다. 신의와 존중의 성숙한 풍토를 이루는 것이 이 시대 또 다른 희망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