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34) - 적국의 애국시를 가르치라

입력 2012-03-12 17:36

적국의 애국시를 가르치라

나 예수의 모국인 이스라엘 전국이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팔레스타인의 애국시를 고등학교 교과서에 게재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버스 안에 타고 있는 유태인들도 그 소식을 듣고는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 심지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교육부 장관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애국시가 라디오에서 잠깐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정확히 들리지 않아서 저녁 신문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신문에도 줄여서 몇 줄만 보도되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기록해 두어라,

너희들이 포도원을 도적질했다는 것을

우리 조상의 포도원 말이다.

그리고,

땅을 도적질했다는 것을.

우리들이 자손들과 함께 갈아먹던 땅 말이다.

너희들은 우리들에게 돌만 남겨놓지 않았더냐.

그런 시였습니다. 정말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적개심이 철철 넘치는 시입니다. 초등학생들까지 나서서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하여 돌팔매를 던지도록 폭발적 선동성을 잔뜩 지닌 시였습니다.

바라크 이스라엘 수상은 즉시 이런 결정은 시기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교육부 장관에게 사임압력을 가했습니다. 정통파 유태인들은 사리드가 어느 나라 교육부 장관이냐면서 당장 파면시키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런 시를 감수성이 예민한 이스라엘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애국심에 비수를 꽂는 범죄행위이며 이스라엘 땅의 굼벵이와 지렁이들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그러나 사리드 교육부 장관은 당당한 태도로 반격했습니다. 적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알도록 해야 바른 애국심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으로 치면,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뜻입니다.

나 예수는 마침 그 교육부 장관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리드 장관님, 큰일을 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친구인 나 예수도 일찍부터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 기억하시지요? 우리가 먼저 적개심이 가득한 원수의 나라 시를 가르치는 것이 이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대답을 듣고 나 예수는 곧바로 팔레스타인 땅을 향해 발걸음을 재빨리 옮겼습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현수막 하나를 만들어 가슴에 품었습니다.

검문소를 지나 팔레스타인 땅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돌 몇 개가 날아왔습니다. 어린 소년 소녀들이 던진 것입니다. 작은 돌 하나가 이마에 맞아 피가 조금 흘러내렸습니다.

나 예수는 현수막을 펴서 흔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애국시가 큼직한 아랍글자로 적혀 있는 현수막입니다. 특히 “돌만 남겨 놓지 않았더냐”는 구절을 그들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큰 글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돌을 길바닥에 던지고 일제히 손을 높이 쳐들고 몰려왔습니다. 나 예수는 한 어린이를 꼭꼭 안아 주었습니다.

그 다음 수소문해서 다아위쉬(Darwish)라는 시인을 만났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족이 당하는 압박과 설움을 대변하는 대표적 애국시인입니다. 사리드 이스라엘 교육부 장관이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시가 바로 그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나사렛 목수 예수입니다. 시인님의 작품을 읽고 저의 조상 다윗 왕을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도 다윗의 시를 읽으며 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스라엘 사리드 교육부 장관이 선생의 시를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소식 들으셨지요? 혹시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의 애국시를 가르치시면 어떨까 해서요.”

그는 아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것이 맞는데 만약 팔레스타인에서 그런 말 했다가는 극우파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가 오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 시인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런 부탁을 했습니다. 나 예수는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렸기에 두 손을 꼭 잡고 하늘을 우러러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다정한 친구가 되는 날이 어서 속히 오도록....... 그리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멘’을 합창했습니다.

이정근 목사 (원수사랑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