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잃고 80세 넘은 노인도 멋지게 걷잖아요” 수족 잃은 美 병사 1000명에 ‘용기전파’

입력 2012-03-11 20:01

미군 중령 출신 엘리너 포터(82)가 남편인 톰 포터 예비역 소령을 만난 것은 1953년 1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포트 샘 휴스턴’ 기지에서였다.

1년 전 로드아일랜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프로비던스 시의 수질 검사 대신 국민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여성의무대에 자원입대했다. 물리치료사로 활동하며 화상 및 장애 병사들을 돌보던 엘리너는 한국전에서 두 다리를 모두 잃고 후송된 톰을 만났다. 바람둥이처럼 장난을 걸어오곤 하던 톰과 엘리너는 데이트 끝에 54년 3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50여년이 흘러 네 아이를 둔 노부부는 2005년 이라크전에서 다리를 잃은 젊은 미군 병사의 이야기를 읽고 다시 봉사의 길을 걷게 됐다. 미국 장애인협회를 통해 월터리드 보훈병원에서 참전 부상자들의 재활을 돕는 부부 치료사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부부는 이후 7년간 수족을 잃은 병사 1000명과 가족들에게 목표 의식과 우정을 선사해 이들이 절망의 수렁을 헤쳐 나오도록 도왔다. 병사들은 이들을 결혼식에 초청했고 부부 이름을 따 아이 이름을 짓기도 했다. 병사 가운데는 세례를 받을 때 노부부를 대부모로 세우기도 했다.

엘리너는 “우리가 한 일은 방 안을 걷는 일뿐이었다”면서 “참전용사들은 멋지게 걸어 다니는 내 남편이 자신들처럼 상이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80세가 넘은 노인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냐’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포터 부부의 이야기는 9일(현지시간) 알링턴 국립묘지 내 미국여군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 여군 기념행사가 열린 것을 계기로 미 워싱턴포스트에 10일자로 소개됐다. 미 국방부 산하 ‘한국전 60주년 기념위원회’가 개최한 행사에는 엘리너를 비롯해 한국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전한 여군 10여명과 그 가족들, 한·미 양국 군 인사들이 참석해 간담회와 리셉션을 가졌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입대한 여성은 100만명이 넘지만 이들이 행정이나 의무 등의 임무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된 첫 계기는 한국전으로 평가된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