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속 과학읽기] (10) 과학자, 모델로 나서다

입력 2012-03-11 17:47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가 그린 사람들은 시공을 넘어 멈춰선 것 같은 순간을 보여준다. 그들을 둘러싼 빛의 뒤에 내밀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 보인다. 이 그림 속, 창문의 햇빛을 얼굴 가득 받고 있는 천문학자는 별자리가 그려진 천구의를 천천히 돌리며 보고 있다.

천구의 왼쪽 상반부에 큰곰자리가 그려져 있고, 책상에는 천문관측기가 비스듬히 놓여 있다. 펼쳐 놓은 책은 천문학과 지리학 지침서이다. 이로써 그림은 학문을 연구하는 데 있어 기하학적 지식과 기계적 도구를 사용하는 외에 ‘신의 영감’의 도움을 권하는 대목이다. 뒷벽에 붙어 있는 그림은 모세를 발견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최초의 지리학자’ 모세의 오래된 지혜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일본 기모노풍의 긴 실내복을 입고 있는 이 사람은 베르메르의 이웃이었던 과학자 반 레이우엔훅(1632∼1723)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으로 광학렌즈를 발명한 그는 베르메르가 카메라 옵스큐라 기법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 과학자는 베르메르에게 이 그림과 함께 ‘지리학자’(프랑크푸르트 미술관 소장)도 그려줄 것을 주문했고 직접 모델을 섰다. 새로운 발명으로 천문학과 지리학이 발전함으로써 사회도 함께 변화하기 시작하던 시절, 그래서 천구의와 지구본을 한 쌍으로 제작·판매하는 것이 상례였다.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와 화가는 두 폭의 그림으로 쌍을 이루어 과학의 길을 보여주려 했다.

김정화(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