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이삭줍기

입력 2012-03-11 17:47

요즘이야 쌀이 남아돌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집이 드물었다. 쌀이 워낙 귀하다보니 가을걷이 막바지 타작이 끝난 논에서는 이삭줍기가 성했다. 주운 벼이삭을 가마솥에 넣고 찐 뒤 절구로 빻아 찐쌀로 먹기도 한다.

피자와 햄버거 등 인스턴트식품이 넘쳐 찐쌀은 이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그것은 가난과 고통과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가진 논은 없고 남 일 해주느라고 바빠 이삭도 줍지 못한 농가에서는 찐쌀조차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맛난 것 다 먹어보고 뭐 특별한 것이 없나하고 찾던 끝에 인터넷을 뒤져 발견하게 되는 ‘추억의 찐쌀’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동의 고통과 가난을 상징하는 이삭줍기는 서양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프랑스의 자연주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머리 수건을 한 촌부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허리를 굽혀 이삭을 줍는 이 그림은 명화 중의 명화로 통한다. 그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밀레는 노동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대지의 색에 가깝게 그렸다. 상류층보다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더 많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사가들은 해석한다.

고된 노동을 상징하는 이삭줍기는 정치권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 특히 정당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데다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정치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이 말은 부정적인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유력한 정당의 공천을 받지 못해 낙마한 정치인을 별 힘들이지 않고 영입할 때 흔히 이삭줍기에 성공했다고 표현한다.

최근 보수의 한 갈래를 대표하겠다고 기치를 올린 신생 정당 국민생각의 박세일 대표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전여옥 의원을 영입하며 ‘이삭줍기’가 아니라 ‘보석찾기’라고 에둘러 표현한 것은 이런 인식의 반영이다. 공천이 계파간 권력투쟁 성격이 없지 않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차관을 지냈거나 나름 실세라고 자부하며 낙마를 생각지 않았던 인사들의 낙천이 잇따르고 있다. 탈락 인사끼리 세를 결집해 새 정당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높다. 앞으로 이삭줍기도 더욱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대로 된 보석을 찾았는지는 선거가 끝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본래 의미대로 노력과 공을 들이는 이삭줍기가 된다면 성과는 더욱 크지 않을까 싶다. 훌륭한 인재라고 공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