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고혜련] 건망증 유감
입력 2012-03-11 17:51
“어, 누구더라?” 길에서 반갑게 인사하던 그 사람 이름이 반나절이 지나 별안간 ‘뿅’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요즘 안타까운 것은 휴대폰을 놓고 와서도, 찌개냄비를 자주 태워서도 아니다. 세상만사 스테레오식으로 느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기억창고에 있는 이것저것이 한데 엮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입체적 접근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 실로 오랜만에 주체할 수 없는 감상에 젖은 건,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을 보냈던 남 프랑스 아를의 한 병동에서였다. 그가 정신병과 싸우면서 그림에 처절하게 매달렸던 정신병동과 숲 속 산책로에는 100여 년 전 외로움과 사투를 벌인 반 고흐가 맹렬하게 살아있었다.
그 장소들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긴 채 형형하게 이글거리는 그의 그림, 지독히 불운했던 반 고흐의 삶에 대한 기억은 하나의 음악을 만나자 흐느낌으로 터져 나왔다. 마침 휴대폰에 저장했던 돈 맥클린의 노래, ‘빈센트’가 가세하자 마치 그의 아픔과 외로움이 나의 것인 양 폐부를 찔렀기 때문이다. 그 가사 하나하나에, 그의 삶에 대한 내 사전 지식이 엮이자 꿈틀꿈틀 살아서 감성을 자극했다. 아는 만큼 느껴지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입체적 느낌의 경험은 기억력이 신통치 않아진 내가 아를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의 일대기, 그림마다에 얽혀있는 지난했던 삶 등을 다시 복습하는 만반의 준비를 해 가능했다. 덕분에 10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와 조우한 듯 후련했다.
한때 내 젊음의 고민과 아픔을 달래주었던 100여 편의 아름다운 노랫말이나 시문들. 어느덧 남루해진 일상의 머릿속에서 빠져나가 음유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는 건 슬픈 일이다. 그랬다. 그때는 상황에 맞는 절절한 운율들이 머릿속에서 출렁거려 읊조리면 치유와 평온을 누릴 수 있었다. 아직 마음은 소시적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건망증은 수시로 나를 위축시킨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는 것이 안타까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표현하지 않는 외로움을 알아보는 것, 갈수록 작은 일에 감사하는 일, 제 처지를 좀 더 제대로 알아가는 것 등 정작 소중한 일에 보다 마음을 쓸 수 있게 됐다. 생명의 자연스런 수순인 건망증을 탓하지 말고 오늘부터 좋은 시문이나 다시 열심히 외워봐야겠다.
88세의 연세에 3월초부터 18일간 공연중인 연극배우 백성희 선생님, “녹 스는 게 두렵지, 닳아 없어지는 건 두렵지 않아”라며 요즘도 성경공부반을 이끄는 100세 방지일 목사님이 계신데, 이 시퍼런 나이에 무슨 엄살인가.
친구를 떠나보낸 연로한 어머니께, 은퇴 후 어깨가 처진 남편에게, 아들을 결혼시켜 허전한 친구에게 힘이 되는 좋은 글들을 들려주리라. 순간순간, 그들이 쓸쓸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된다면 이 얼마나 좋은가.
고혜련 제이커뮤니케이션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