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인 것 같다… 빨리 기소 해달라” 박은정 검사 진술서 공개
입력 2012-03-09 21:35
새누리당 나경원 전 의원의 남편 김재호 부장판사의 기소청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 판사로부터 기소청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은정 인천지검 부천지청 검사가 경찰에 제출한 진술서 전문이 공개되면서다. 경찰은 공개된 진술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그동안 전언(傳言) 수준에 머물렀던 기소청탁과 당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났다.
9일 주간동아가 입수, 공개한 진술서에 따르면 박 검사는 노사모 회원이 나 전 의원을 비방한 사건을 배당받고 며칠 후 김 판사로부터 빨리 기소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 검사는 김 판사가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판사는 당시 박 검사가 근무했던 서울서부지검의 관할 법원인 서울서부지법에 근무하고 있었다. 따라서 검찰이 기소만 해주면 법원에서 유죄를 받도록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검사는 또 출산 휴가를 앞두고 후임검사에게 사건을 넘기면서 김 부장판사의 부탁내용을 전달했고, 김 부장판사에게도 기소청탁 인수인계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이는 김 부장판사와 박 검사 후임인 최영운 대구지검 김천지청 부장검사가 경찰에 서면 또는 전화상으로 기소청탁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것과 배치된다.
이에 따라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서는 박 검사와 김 부장판사, 박 검사와 최 부장검사 간 대질신문이 불가피해졌다. 경찰도 대질신문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대질신문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김 부장판사가 아직 경찰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데다 피고소인 신분으로 소환에 응한다고 해도 참고인 신분인 박 검사와 최 부장검사가 출석과 대질을 거부하면 경찰이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질신문이 무산될 경우 경찰은 세 사람을 각기 조사한 뒤 답변 내용을 비교 분석할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참고인이 출석 요구에 불응한다고 해도 강제로 구인할 수 없으며, 대질신문은 어느 한쪽이 거부하면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검사의 진술서가 공개되자 법원과 검찰 내 분위기에 변화 조짐도 감지된다. 그동안 본인들이 기소청탁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현직 판·검사들에게 경찰 조사에 응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소청탁이 사실로 드러나자 당사자들의 침묵이 법원과 검찰 조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스스로 조사에 응하거나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진술서 전문
인천지방검찰청 박은정 검사입니다. 저는 2005년 2월경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부임해 같은 해 8월경까지 공판부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재판부 공판검사로 근무하면서 당시 재판장이었던 김재호 판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공판업무를 마치고 다시 형사부 검사로 복귀하여 근무하던 중 2006년 1월 17일경 나경원 의원이 나경원 의원에 대한 친일파 재판 관련 허위사실을 유도했다는 내용으로 한 네티즌을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죄로 고소한 사건을 배당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며칠 후 김재호 판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내용은 “나경원 의원이 고소한 사건이 있는데, 노사모 회원인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허위사실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건을 빨리 기소해 달라. 기소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건기록을 검토해본 결과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게시판 같은 곳에 올린 것으로 일단 피의자 조사를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사관에게 피의자를 소환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피의자가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소환일정을 잡지 못하였고 제가 며칠 후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은 처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건이 재배당될 것이기 때문에 재배당을 받은 후임검사님에게 포스트잇으로 사건기록 앞표지에 김재호 판사님의 부탁내용을 적어놓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김재호 판사님께도 제가 출산휴가를 가게 되어 사건처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 후임검사에게 내용을 전달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2012년 3월 5일 박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