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회고로 복원된 ‘이미륵 생애’… ‘이미륵 박사 찾아 40년’
입력 2012-03-08 20:00
이미륵 박사 찾아 40년/정규화/범우
1946년 독일 뮌헨 피퍼출판사에서 출간된 독일어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작가 이미륵(1899∼1950)에 대한 전기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그를 기억하는 증언자들의 회고를 통한 실증적 전기는 흔치 않다. 바로 이미륵에 대한 실증적 전기에 도전한 이는 한국독어독문학회장을 역임한 정규화 성신여대 명예교수다.
1919년 경성의전 3학년 때 3·1운동에 가담한 뒤 중국 상하이를 거쳐 1920년 독일에 도착한 이미륵은 뷔르츠부르크대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의학을, 뮌헨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1928년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수재였다. 하지만 독문 서평만 무려 55개나 되는 문제작 ‘압록강은 흐른다’가 출간된 지 4년 후 그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숨을 거둔다.
비록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이미륵의 삶 속엔 극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다. 의사 지망생이었다가 돌연 방향을 바꿔 이국 땅에서 감성의 텃밭을 글로 가꾸는 작가로 변신한 게 그것이다. 그만큼 그는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저자가 이미륵의 이런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은 1956년 ‘서울대 대학신문’에 실린 ‘어떤 이방인-독일 사람들의 추억 속에 살아 있는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읽은 직후다. 이미륵과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체류한 고병익 교수의 기고문이었다. 이후 1965년 독일 장학금을 받아 뮌헨대로 유학을 간 저자는 이미륵이 자주 들렸다는 고서점을 시작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 나선다. 피서지에서 이미륵을 알게 됐다는 엘리자베트 샬크, 그에게 서예를 배웠다는 롯테 뵐플레 박사, 하숙집 주인이던 알프레드 자일러 교수의 아들 오토 자일러, 스웨덴 친구 에곤 베른하르트 베너, 그리고 연인이었던 에파 크라프트 등등.
저자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걸쳐 이들로부터 이미륵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이미륵이 에벤하우젠 요양소에 약 1개월 동안 입원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같은 요양소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의 부인 마르가레테 여사가 노환으로 입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압록강은 흐른다’를 요양원에서 읽고 그에게 찬사를 담은 카드를 보낸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시적인 미(美)로 가득 찬 책으로서 독자를 황홀하게 하는 낯선 세계를 보여줍니다. 이제 저는 당신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고향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동시에 그 고향의 좋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해 흡사 향수 같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65쪽)
귀국 후에도 이들과 수백 통이 넘는 서신을 교환한 저자의 숨은 노력은 이미륵을 다시 한번 지상에 살려놓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