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08년 ‘친박 학살’ 벌써 잊었나

입력 2012-03-08 19:55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전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 작업을 좌지우지했다. 친이계 핵심인 이들이 공천한 결과는 ‘친박 학살’로 불렸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판 승부를 겨룬 박근혜 현 비상대책위원장 쪽 인사들이 대거 낙천된 탓이다. 박 위원장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비난했었다.

이 두 사람이 어제 언론에 등장했다. 일찌감치 공천이 확정된 이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은 감정적·보복적 공천을 하지 말고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을 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지금까지 친이계 의원 20여 명이 낙천하자 친이계 좌장격인 이 의원이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이 전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여론조사를 통해 당선이 유력한 사람을 공천하는 게 시스템 공천인데, (새누리당에선) 지금 그렇게 안 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4년 전 공천의 칼자루를 쥐고 친박을 쳤던 이들이 박 위원장에게 친이계 선처를 부탁하거나 공천과정을 문제 삼는 처지가 됐으니 새삼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불평하기에 앞서 지난 총선 때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현 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친이·친박이라는 계파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주요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들 아닌가. 아무런 자성 없이 이제 와서 감정적으로, 반대진영 제거를 위한 공천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박 위원장은 ‘보복 공천’ ‘공천이 아닌 사천(私薦)’이라는 지적을 되새겨 들어야 한다. 박 위원장은 “엄격하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하고 있고, 친이·친박 개념은 없다”고 했지만 공천결과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내편 네편 가르는 공천으로 끝난다면 공천 후유증은 더 커질 것이고, 표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낙천한 당사자들에게는 심사 자료를 공개하며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