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마가를 찾아서] (11) 당신이 만약 마가였다면?

입력 2012-03-08 22:27


마가는 아버지 사업장 하나씩 복구하며 흉년 시 곡물수입 준비한듯

필자가 소설 ‘마르코스 요안네스’를 구상하면서 마가는 예수께서 아직 무덤에 계실 때 알렉산드리아로 피신 겸 유학을 떠났던 것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카이우스 황제 즉 칼리굴라의 폭정 말기인 AD 40년에 귀국한 것으로 하고, 그 이듬해 카이우스가 살해당하고 글라우디오 황제가 즉위한 것에 맞추었다.

그가 귀국하여 어머니와 외삼촌으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사도들의 활동과 예루살렘 공동체의 상황을 직접 보았다고 해도 그들의 일에 참여한 것 같지는 않다. 그가 외삼촌 바나바를 따라 안디옥으로 간 AD 46년까지는 6 년간의 공백이 더 남아 있는데 그동안 마가는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일까?

이렇게 은밀한 일을 추적할 때 필자는 곧잘 자신을 당시의 상황 속에 밀어 넣고 사태의 변화를 살핀다. 나라면 그 때 무엇을 하였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독자들과 함께 상상을 해 보고 싶어진다. 당신이 만일 마가였다면 그 때 어떻게 하였을 것인가? 내 설정대로라면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율법서와 헬라의 학문을 조화시키려 시도했던 대학자 필로의 강의도 들었고, 저명한 철학자와 수학자들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 사람이었다. 10년만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어머니와 외삼촌에게 들어 예수의 부활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성령 강림의 사건으로 사도들의 인품이 달라지고, 성도의 증가가 폭발적임도 확인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그러나 공동체의 생활 양상은 그리 합리적이지 못했다. 성도들은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시리라는 종말론적 신앙으로 기도와 찬양과 전도에 힘을 쏟고 있었으나, 그분의 말씀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는 아예 하지 않고 있었다. 생업이나 소득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었고, 모든 것을 통용하는 소비 형태는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대로 큰 흉년이 닥치면 당장 재정 상태를 파탄으로 몰아가 은혜로운 ‘통용의 경제’가 오히려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7∼8)

고국에서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해외로 나가는 레위인들이 늘어났고, 그들 중에는 모세의 축복대로 사업에서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는 이들도 많았다.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신 33:11)

마가의 아버지도 역시 크게 사업을 일으켜 많은 재산을 남긴 사업가였고, 일찍부터 국제적인 안목이 있어 아들을 본명 요한으로 부르지 않고 마가 즉 마르코스라는 헬라식 이름으로 불렀다. 레위인 출신인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도 많은 재산을 남겼다는 것은 그가 유능한 사업가였음을 말해 준다. 그가 큰 사업가였다면 필시 교역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를 드나들었을 것이고, 그레서 마가는 더욱 그 알렉산드리아로 가고 싶어했을 수도 있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호 11:1)

후일 마태는 호세아서의 그 구절이 아기 예수의 애굽 피난을 예언한 말씀으로 해석했으나 마가에게도 역시 공감이 가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쨌든 부친의 국제적 감각과 열린 생각 그리고 사업적인 재능은 마가에게도 필시 유전되어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그가 공부하던 알렉산드리아는 곡물의 집산지이고,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들과 거래를 하는 교역의 중심지였으므로 학문보다도 현실의 역동성이 그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그런 안목을 지녔던 마가가 보기에 유대의 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이 그 주류였다.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대로 가뭄이 닥치면 곡물 생산이 격감하는 것은 물론 짐승의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된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버리며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흐려지는도다”(렘 14:5∼6)

기근이 닥치면 우선 식량을 조달하는 문제가 급하다. 수천, 또는 수만 공동체의 식량을 조달하려면 아직 기근이 닥치지 않은 먼 나라로부터 곡물을 수입해 들여야 한다. 그러나 식량의 여유가 있다고 해서 공짜로 보내주는 나라는 없다. 그것을 사들이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흉년이 들었을 때 농업 국가인 유대가 지불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고, 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간 것이다.

곡물을 수입하기 위한 자금을 만들려면 무엇인가 팔아야 하는데 유대 같은 나라가 상품을 만들어 팔려면 원자재 값이 싸고 부가가치가 높은 수공예품 밖에 없다. 마가는 아버지의 사업망을 하나씩 복구하면서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 수공예품 생산 단지를 조성했을 것이다. 그가 사업적 재능이 있었다면 우선 가죽 세공품과 금속 세공품을 시작했을 것이고, 어디에나 있는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본래 하나님도 흙으로 사람을 빚은 토기장이셨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사 64:8)

또 유대에 흔한 것은 광야의 모래이다. 내가 마가였다면 모래를 원료로 하는 유리 세공품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업자들의 세공 수준이 높아지면 보석 세공까지 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보석 세공으로 유명하다.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의 곡물 거래소를 통해 지중해 연안의 곡물생산현황을 조사하고, 수공예품의 수출 시장도 파악하며 각 도시에 대리점 등 영업망을 구축하는 한편 제품의 디자인 전문가와 자금 관리 담당도 초빙했을 것이다.

필자는 마가의 수출산업 공단을 관리할만한 사람을 물색하다가 그 적임자 하나를 찾아냈다. 바로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였다. 여리고는 당시 각국의 상품이 모여드는 상업 도시여서 그곳의 세리장이라면 국제 교역의 사정에 밝고 헬라어와 아랍어는 물론 여러 나라의 언어를 다 구사할 수 있는 자였음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소설 ‘마르코스 요안네스’에서 삭개오는 유대와 사마리아의 수출공단을 다 관리하는 지도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돌아온 마가가 그의 진로를 선택하는 데는 그 어머니 마리아의 조언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와 그 제자들을 위해 유월절 만찬 자리를 준비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체포되었을 때 제자들을 자신의 집의 숨겨 주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으나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또 숨어있는 제자들을 뒷바라지 하여 부활한 예수께서도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셨다. 그분이 승천한 후에도 그 다락방을 기도처로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마리아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거나 내세운 적이 없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31)

종말론적 신앙으로 성급했던 바나바는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터인데 그분의 일을 열심히 하여 상급을 쌓아야지 그 날이 가까운 이 때에 돈벌이가 웬 말이냐고 그를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마가의 어머니는 그녀의 오라비 바나바처럼 성급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꼭 나서서 전도하는 것 외에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마가와 그 모친의 이야기를 쓰면서 필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며 성경을 읽고 있을 때 내게 신학을 공부하면 어떠냐고 권하는 분들이 계셨다.

“혹시 그분들을 통해 주님께서 권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나를 위해 늘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나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셨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다시 성경을 읽다가 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 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출 3:21∼22)

그 은과 금은 후에 하나님의 성막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자녀가 그들의 재능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릴 때 그 영광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내가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글을 쓰는 일과 재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신학 공부를 단념하고 오직 글을 써서 그 성막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데 전념했다. 아가보가 예언한 기근이 닥쳤을 때 마가이든 누구든 예루살렘 공동체를 큰 규모로 도운 후원자가 없었다면 그들은 아마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김성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