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달리는 국토여행] 자전거에 몸 맡기니 백제 유적·남도 풍경이 눈앞에…
입력 2012-03-07 21:54
금강 146㎞·영산강 133㎞ 종주자전거길
◇금강종주자전거길(146㎞)
대전의 대청댐에서 출발하는 금강종주자전거길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로 자전거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특별한 길이다. 대청호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온다. 신라시대 고승 원효는 대청댐 자리를 가리키며 이곳에 3개의 커다란 호수가 생기면서 임금 왕(王)자의 지형을 만들어 장차 국왕이 거처하게 된다고 예언했다. 이 예언은 희한하게 맞아떨어져 천년의 세월이 흐른 후 대청호와 대통령별장인 청남대가 생기더니 한술 더 떠 인근에 행정수도인 세종시까지 들어섰다.
금강종주자전거길은 처음부터 스릴 만점이다. 2차선 도로 옆 절벽에 파일을 박고 데크를 설치한 자전거길이 3㎞ 정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데크 아래로 푸른 강물이 흐르고 봄비에 연둣빛 기운이 완연한 왕버드나무의 축축 늘어진 가지들이 강에서 머리를 감는 여인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대전 외곽을 살짝 돌아 나온 자전거길은 이내 강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충북 청원 땅을 밟는다. 그리고 충남 연기로 내려가 세종시 합강도에서 미호천과 합류해 강폭을 넓힌 금강을 따라 둑길과 둔치를 달린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세종시 첫마을에서 금강을 건넌 자전거길은 세종보를 뒤로 하고 공주시로 빨려든다. 선사시대 유물을 전시한 석장리박물관과 공산성, 무열왕릉, 국립공주박물관 등을 순례한 자전거길은 공주보에서 부여를 향해 쏜살같이 질주한다.
공주보에서 부여보까지 약 20㎞ 구간은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금강종주자전거길 최고의 라이딩 구간. 금강은 직선으로 흐르지만 자전거길은 드넓은 둔치를 적당히 좌우로 굽어 돌고 오르내려 자전거 타는 재미가 황홀하다. 부여에서 역사재현단지와 낙화암, 구드래조각공원 등을 관람한 자전거길은 자동차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호젓한 시골 들녘을 달려 젓갈장으로 유명한 논산 강경을 향한다.
1900년대 모습을 간직한 강경포구에서 전북 익산의 나바우성지를 거쳐 군산 땅을 밟은 자전거길은 웅포에서 강 건너 서천의 신성리갈대밭을 마주한다. 군산의 나포뜰과 서천의 신성리갈대밭에서 금강하굿둑까지는 겨울철새들의 도래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가창오리를 비롯해 큰고니, 기러기, 청둥오리 등 수십만 마리가 날아들어 철새들의 왕국을 건설한다. 해질녘 가창오리들의 황홀한 군무는 금강종주자전거길에서나 맛보는 감격.
대청댐에서 금강하굿둑까지 146㎞를 달려온 금강종주자전거길은 채만식문학관과 이웃한 금강호시민공원의 진포대첩비 앞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쌀을 약탈하기 위해 금강으로 침입한 500여 척의 왜선을 고려의 최무선이 직접 발명한 화포로 격파한 진포대첩의 현장이자 새만금방조제로 가는 길목이다. 9시간 40분 소요.
◇영산강종주자전거길(133㎞)
전남 담양의 용추계곡 용소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담양호에서 덩치를 불린 뒤 광주, 나주, 무안을 거쳐 목포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남도의 젖줄이다. 133㎞ 길이의 영산강종주자전거길은 담양호 아래에 위치한 대성교에서 강둑을 타고 목포의 영산강하굿둑까지 황홀한 남도풍경을 수시로 곁눈질하며 달린다.
갈수기를 맞아 바짝 여윈 영산강을 따라 가던 자전거길은 담양 금성면 원율리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벗한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으로 생긴 메타세쿼이아는 1970년대 초에 전국적으로 가로수 심기 사업이 한창일 때 심은 속성수로 담양군청까지 8.5㎞ 구간에 150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담양군은 최근 드라마 ‘여름향기’와 영화 ‘화려한 휴가’로 유명해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보호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용단을 내렸다.
푸조나무 등 수령 200∼300년의 노거수 수백 그루가 2㎞ 길이의 관방제림에 뿌리를 내린 영산강변을 달리던 자전거길은 담양습지의 대숲을 빠져나오자마자 광주 시가지로 접어든다. 빛고을 광주에서 황룡강과 합류해 강폭을 넓힌 영산강은 나주평야로 들어서기 직전에 쌀알을 형상화한 승촌보를 만난다.
승촌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자전거길은 봄에는 유채꽃과 배꽃이 만발하는 들판을 달려 나주시내로 들어간다. 나주곰탕으로 허기를 달랜 자전거길은 우리나라 최초로 바다가 아닌 강에 세워진 영산포등대를 만난다. 영산강하굿둑이 들어서기 전까지 홍어를 비롯해 소금과 해산물을 내리고 나주에서 쌀을 실어가던 황포돛배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불이 꺼진 지 오래다.
나주 구간 최고의 절경은 황포돛배가 다닐 수 있도록 통선문이 설치된 죽산보와 다야뜰을 내려다보는 나주영상테마파크.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고구려식 건물들은 드라마 ‘주몽’의 촬영 무대로,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른 아침 황포돛배가 강심을 가르는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영산강을 넘나들며 함평과 영암을 차례로 순례한 자전거길은 몽탄대교를 건너 무안 땅에서 ‘자전거 하이웨이’로 불리는 둑방길을 만난다. 몽탄대교에서 소댕이나루에 이르는 약 10㎞의 둑방길은 일직선 구간으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확 트인다. 가을에는 무안들녘의 황금물결과 강변 갈꽃의 은색물결, 그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영산강이 어우러지는 꿈의 라이딩 구간.
하굿둑에 막혀 흐름이 둔화된 영산강과 달리 무안에서 한껏 속도를 높인 자전거길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그 속도 그대로 목포의 영산강하굿둑까지 질주하다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8시간 50분 소요.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