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복수초 향기나는 사람들

입력 2012-03-07 18:50


오늘은 어디에서 봄비를 맞으셨는지요? 겨우내 팍팍하게 마른 땅을 포근히 적셔주는 봄비가 미아리 성매매 집창촌 골목을 가득 덮은 검붉은 비닐천막 위에 내려 또르르 골목길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씨앗을 잉태할 남도의 보슬보슬한 밭고랑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귀한 선물인 봄비가 내리고 있겠지요. 하늘아래 있는 세상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소중하게 만들어졌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니까요.

두 달 전부터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수영씨는 이제는 약국에 들러 저에게 반갑게, 환하게 웃으면서 조금은 당당하게 인사를 합니다. 지난주에 1부 예배를 드려서 수영씨를 만나지 못한 저도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저의 안부를 묻고자 약국에 온 그녀를 보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밤새 힘든 일을 마치고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는 많이 지쳐보였지만 환하게 웃는 모습은 노란 복수초를 많이 닮았습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을 차갑게 얼려 자신의 발아래 복종시키는 겨울의 거센 기운에 온 몸으로 맞서 기어이 샛노란 꽃을 피우고야마는 봄의 꽃, 노란 복수초. 제가 참 좋아하는 꽃입니다.

수영씨의 교회생활이 삭풍에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인연 가운데 복수초의 향기가 나는 먹먹하고 귀한 인연들이 있습니다.

야식장사가 영 시원치 않은 두꺼비 이모는 낮에 분식장사를 시작하려고 며칠 전부터 가게를 고치고 있습니다, 새로 만든 반찬이라며 달래를 넣고 맛있게 무친 파래무침과 오동통한 무말랭이 무침을 챙겨다 주시면서, 이 팍팍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 힘들다고 말하는 이모의 얼굴은 눈물바람 끝에 부어있었습니다.

험한 동네에서 장사를 하다보니 이모의 말투는 많이 거칠어져 있답니다. 장성하여 어른이 된 자녀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감정조절이 안되어 상스런 소리가 먼저 나오니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어쩌면 좋겠냐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지는 벌써 수년전부터였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도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는 그녀는 그렇게 아이들은 아끼고 품고 살고 있으면서도 툭툭 던지는 거친 말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 스스로를 베어내는 그런 삶을 오랫동안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알고 있을까요. 엄마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두꺼비 이모가 이제는 알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를…. 그녀는 맛깔스런 고들빼기김치를 담글 수 있는 귀한 손을 가진 사람입니다. 20㎏이 넘는 마차를 밀고 다니면서 즐겁게 야식장사를 할 수 있는 튼튼한 발을 가진 사람입니다. 값싸고 양 많은 중국산 재료를 쓰지 않고 우리 먹을거리만을 고집하는 그녀는 맑은 심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렇게 많은 그녀의 좋은 점을 어쩌자고 그녀 자신은 모르는 것일까요. 더 이상 그녀가 아파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그녀가 가득 찼으면 좋겠습니다.

준영엄마가 요즘 많이 아픕니다. 준영이 형이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준영엄마의 통증은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아이를 그렇게 아프게 키웠다는 자책감에 빠지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온 몸이 들고 일어나 허리디스크도 재발하고 갑상선 기능도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잘못으로 준영이형이 우울증에 걸린 것은 분명 아닌데도 그녀는 그 멍에를 혼자 지려고 합니다. 그녀의 멍에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멍에를 내려놓고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꿈꿔봅니다. 그녀는 맑고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서울 미아리 집창촌 입구 ‘건강한 약국’ 약사·하월곡동 한성교회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