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노석철] 해외자원개발 치적의 함정
입력 2012-03-07 17:58
지식경제부가 지난 5일 발표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미개발 유전 3곳 확보’ 보도자료에는 사족(蛇足)이 있었다. “막후협상을 주도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UAE 최고 통치자인 아부다비 국왕, 왕세자와 대한민국 대통령과의 무한한 신뢰 없이는 금번 최종계약이 체결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세계 석유메이저들을 따돌리고 우리가 유전을 따낸 것은 아부다비 국왕과 왕세자가 이명박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국왕의 말이 곧 법’인 UAE가 유전개발 노하우가 부족한 한국에 선뜻 광구를 내준 게 전적으로 이 대통령 공이란 얘기로 들린다. 물론 이번 계약에서 이 대통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고비마다 기지를 발휘하고 집요하게 UAE 측을 설득해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건 지난해 3월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럼에도 보도자료가 거북스러운 건 ‘치적’에 목말라하는 현 정부의 조급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데 자랑을 하면 비위에 거슬리는 게 우리 정서다. 이번 외에도 UAE 원전 수주나 ‘아덴만 여명작전’ 등에서 이 대통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개운치 않았다. 물론 이번 UAE 유전 계약은 중동지역에서 세계 5번째로 깃발을 꽂으며 해외 자원개발 역사를 새로 썼다는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도 박수를 보내기가 꺼려진다. 오히려 혹시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말 못할 뒷거래가 있었던 게 아닌가. 정권이 바뀌면 유야무야되는 건 아닌가. 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현 정부 들어 자원개발 실적 부풀리기가 잦았던 탓이다. 외교부 등 전·현직 고위관료들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매장량 등을 뻥튀기하고 주가를 띄워 배를 채웠다. KMDC의 미얀마 가스전이나 석유공사가 참여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유전도 경제성 논란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원개발=비리’라는 인식마저 생겼다.
사실 자원개발 사업은 도박이나 다름없다. 탐사와 시추를 해서 광물이 발견되지 않으면 투자한 거액을 날리게 된다. 그럼에도 자원빈국인 우리는 자원개발을 멈출 수는 없다. 중국은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아프리카, 호주 등에서 자원이 있을 만한 곳은 싹쓸이를 한다. 자원전쟁을 대비한 미래 투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KMDC의 미얀마 가스전이나 이라크 쿠르드오일 등도 아직 ‘빈깡통’인지 ‘대박’인지 불투명한데 비난만 퍼붓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자원개발이 동네북이 된 데에는 현 정부의 ‘치적쌓기’도 한몫했다.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은 노구를 이끌고 지구를 몇 바퀴 돌며 자원외교에 올인했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지경부 차관도 발을 담갔다. 그러나 자원개발 사업은 곧바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 오히려 정권 실세들이 나서면서 자원개발은 정치영역으로 넘어가 뒤죽박죽 돼버렸다. 정치쟁점이 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반대편은 믿지 않고, 정권실세가 조금만 잘못해도 트집이 잡혀 권력형 게이트가 되는 게 우리 정치시스템이다.
엄밀히 말하면 해외 자원개발은 정권의 의무이지 치적은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여러 악조건을 딛고 묵묵히 우리의 자원영토를 넓혀왔다. 이번 유전 계약도 사실 이 대통령의 공이 30%라면 나머지 70%는 누군가 현장에서 피땀 흘리며 키워온 국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보도자료는 “어려움을 딛고 쌓아온 우리 기술력과 국력이 얻어낸 결과”라고 했어야 맞다.
노석철 산업부 차장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