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逆說, paradox)의 깊이는 음미의 깊이다. 역설은 진리에 반대하는 듯 보이나, 잘 음미하면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역설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신비는 역설의 신비다. 역설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기이함이다. 역설 속에 신비로운 행복의 비밀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라고 말씀하신다. 행복의 역설이다. 가난한 것이 복이요, 가난한 자는 그 심령이 천국을 갈망함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역설의 진리다. 예수님은 돈이 많은 것이 부요가 아니요, 심령이 가난함이 참된 부요라고 가르치신다. 참된 부요와 충만한 삶은 내면에 있음을 가르치신다.
역설의 깊이는 음미의 깊이요, 사색의 깊이다. 사색이 없고, 묵상이 없다면 역설의 참 맛을 알기 어렵다. 헤라클리토스는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질병이 있음으로써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법이며, 악을 보면서 선의 가치를 깨닫고, 배고픔을 겪음으로써 포만감의 행복을 알게 되고, 고된 노동의 와중에 휴식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역설을 이해할 때 역경(逆境)을 잘 극복할 수 있다. 역경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불행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역경은 고난이요, 고통이다. 그런데 역경의 역설이 역전 인생을 만들어 낸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었다. 그에게 찾아 온 역경은 혹독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도우심으로 역경을 통해 역전 인생을 경험했다. 상실의 슬픔보다 더 큰 기쁨을 안겨 준 하나님의 손길, 그리고 룻의 사랑이 그녀의 인생을 역전시켰다. 한나에게 그녀의 대적 브닌나가 없었다면 고통도 없었을 것이요, 고통이 없었다면 그녀의 간절한 기도도 없었을 것이다. 한나를 복되게 한 사람은 그녀의 원수였다. 역설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바로 역설을 통해 일하신다.
역설(逆說)의 깊이는 역경(逆境)의 깊이다. 역경의 깊은 곳에 역전(逆轉)의 축복이 숨어 있다. 역경 속에 역전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그러므로 역경을 불행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역경을 힘들다고 토해내지 말고, 품고 또 품어 진주로 만들어야 한다. 그치지 않는 비가 없는 것처럼 역경은 영원하지 않다. 배가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신 후에 떠나는 것처럼, 역경도 뜻을 이룬 다음에는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역경까지도 아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전을 창조하는 재료로 역경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경도 신비인 것이다.